어릴 때 주일 아침이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 기다리던 시간이 있었다. 교회에 가기 전 잠깐 허락된 그 시간에 나는 늘 같은 기차를 탔다. 우주를 달리는 기차, 그리고 그 기차 안에서 만나는 소년과 신비로운 여인. 바로 은하철도 999였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이야기의 모든 세부가 아니라 한 장면의 정서다. 검은 옷을 입은 긴 금발의 여인 메텔이 창밖의 우주를 바라보고 있던 모습. 그녀는 아름다웠고,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신비를 품고 있었다. 어린 나는 그 이야기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기차가 어딘가 인간의 운명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느낌만은 막연하게 느꼈던 것 같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거기에 담긴 철학은 깊다. 가난한 소년 테츠로(철이)는 죽지 않는 기계 인간이 되기 위해 우주 여행을 떠난다. 인간이 기계 몸을 가지면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세계에서, 가난한 인간들은 약하고 쉽게 죽는다. 테츠로 역시 어머니를 잃은 뒤 강해지기 위해 기계 인간이 되기를 꿈꾼다. 신비로운 여인 메텔은 그런 그에게 은하철도 티켓을 건네며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기차가 수많은 별을 지나가는 동안 테츠로는 깨닫기 시작한다. 기계 몸을 가진 존재들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떤 별에서는 인간성이 사라지고, 어떤 세계에서는 영원한 생명이 공허가 되어 버린다. 여행의 끝에서 그는 결국 중요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놀랍게도 지금 우리 시대의 질문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로봇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며, 이제는 물리적 몸을 가진 AI, 이른바 'Physical AI'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술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첨단 AI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AI 도구를 활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람과 오히려 AI에 의해 일자리를 잃는 사람 사이의 격차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은하철도 999에서 기계 몸을 가진 부유한 존재들과 여전히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가난한 인간들로 나뉘었던 그 세계가, 지금 우리 앞에서 다른 형태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기술은 평등을 약속하지만, 현실에서 기술은 언제나 새로운 불평등의 언어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은하철도 999가 던지는 더 깊은 질문은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테츠로가 여행을 통해 목격한 것은 기계 몸을 얻은 존재들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고통이었고, 눈물이었고, 서로를 향한 연민이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는 타인의 고통에도 무감해진다. 죽음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삶의 무게도 함께 사라진다. 테츠로는 결국 기계 인간이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약함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유한한 생명 안에서만 가능한 어떤 깊이를 선택한 것이다. 고통받을 수 있기에 사랑할 수 있고, 죽을 수 있기에 오늘이 소중한 그런 삶의 깊이 말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메텔이라는 인물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메텔은 단순히 테츠로를 인도하는 안내자가 아니다. 그녀는 기계 문명의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도 인간의 따뜻함을 잊지 못하는 존재다. 어쩌면 그녀 자신이 기계와 인간 사이의 경계에 선 존재일 수 있다. 그녀의 슬픔은 거기서 온다. 기계 문명이 약속하는 영원을 알면서도 그것이 인간에게 진정한 구원이 아님을 아는 자의 슬픔. 어린 시절 내가 그녀에게서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아마도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완전함과 영원함 앞에서 오히려 깊어지는, 불완전한 존재를 향한 애도와 사랑.
우리는 지금 기술이 약속하는 미래 앞에 서 있다. 그 미래는 분명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테츠로가 여행의 끝에서 물었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 질문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할지 모른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넘어서, 우리는 그것을 지켜낼 의지가 있는가. 효율과 최적화의 언어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비효율적이고 느리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인간의 방식을 끝까지 붙들 수 있는가. 은하철도 999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결국 이것이아닐까. 인간은 기계보다 약하다. 그러나 그 약함 속에서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다. 그리고 그 포기하지 않음이야말로, 어떤 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존엄이라고 말이다.
장준식 목사 / (밀피타스) 세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