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北 핵 버튼은 허상…하메네이 죽음은 평양에 보내는 최후통첩”

2026-03-11 (수) 07:56:51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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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 리정호 전 북한 39호실 고위관리

▶ “북한 엘리트들, 지도자 제거되면 복수보다 생존 우선”

“北 핵 버튼은 허상…하메네이 죽음은 평양에 보내는 최후통첩”
북한 노동당 39호실(대흥총국) 고위 관리 출신 탈북자 리정호 씨(사진)는 지난달 28일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사망과 1월 3일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 등과 관련해 “이는 평양에 보내는 정권 붕괴 시나리오의 생생한 예고편”이라고 단언했다. 10일 본보를 방문한 리 씨는 평양 지도층들과 30년 넘게 일하면서 직접 경험한 북한 체제의 본질은 “한 사람의 생사에 모든 게 걸린 기형적인 구조”라고 지적하며 “핵무기 100개가 있어도 김정은 개인의 목숨을 지키지 못하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란 하메네이 사망을 북한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
▲이란은 IRGC(혁명수비대) 중심의 집단 지도 체제라 하메네이가 사라져도 임시위원회가 바로 권력을 잡아 보복 미사일까지 쏘아 올렸다. 최고 지도자가 사망해도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다. 하지만 북한은 완전히 다르다. 모든 권력이 김정은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다. 핵 발사 명령권도 최고사령관인 그에게만 있다. 머리가 사라지면 몸을 움직일 방법이 없는 것이다.

-과거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평양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의 상황과 비교한다면
▲2008년 8월 김정일이 쓰러졌을 때였다. 평양에서 매일 결재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그 도장이 없으니 당·정·군 모든 게 2개월 넘게 멈췄다. 미사일 발사 준비도, 무역 거래도, 심지어 식량 배급조차 제대로 안 됐다. 내가 직접 본 현실이다. 그렇다면 김정은 유고 시 누가 핵 버튼을 누르겠나? 그의 측근들은 충성이 아닌 공포 때문에 복종할 뿐이다.


-만약 김정은이 제거될 경우 북한 엘리트들이 복수할 가능성은
▲이란처럼 종교적 순교 이념이 없다. 북한 엘리트들은 실리주의자다. 마두로가 체포되자 부통령 델시 로드리게스가 바로 미국과 협력을 선언하고 CIA 국장과 회담했다. 체제가 유리처럼 깨졌다. 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정은이 사라지면 핵 가방은 복수의 도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협상 카드가 될 것이다. 39호실에서 일하면서 경험한 북한 엘리트들은 국가 지도자보다 자신과 가족의 안전이 우선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최근 행보를 보면 여전히 자신만만해 보인다
▲겉으로는 군부대와 공장을 시찰하고 미사일 쏘며 강한 척하지만, 내부는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메네이처럼 깊은 벙커에 숨는다 해도 계속 숨어있을 수만은 없고, 마두로처럼 일상 패턴이 파악되면 끝이다. 이들을 보면서 아마 “내 차례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래서 핵 고도화에 더 미쳐 달릴 가능성이 크지만, 그것이 바로 자멸의 길이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그에게 조언한다면
▲핵을 가진 지도자는 그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무용지물이다. 권력보다 인민을 생각한다면 핵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북미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김정은은 끝없이 의심하고 개방에 대한 자신감도 부족하다. 세습독재가 아닌 집단지도 체제, 영구집권이 아닌 자연스러운 권력교체를 제시한다면 자신도 살고 북한도 발전시킬 수 있는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언은 숙청의 대상이 될 뿐이다. 살 길이 있는데도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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