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머니 화장실에 숨으시라, 통화가 마지막…”

2025-11-29 (토) 12:00:00 허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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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가 된 홍콩 아파트 화재 현장
▶ 가족들 오열하며 사망자 확인하고

▶ 생존자들은 임시 대피소로 이동해
▶ “경보 울리지 않아 가까스로 대피”
▶ “평생 살았던 집·전 재산 잃어버려”

"화재 소식을 듣자마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화장실로 숨으라고 말했어요."

28일 홍콩 신계 타이포구의 고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 화재로 어머니가 실종된 케빈 창(가명)은 한국일보에 어머니와의 마지막 통화 내용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불길이 순식간에 건물을 삼키고 있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그는 집안에 혼자 있을 어머니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연로한 어머니 혼자 밖으로 나오는 건 위험하다고 여겨, 그나마 물기가 있는 화장실로 피하라고 다급히 외치는 게 전부였다. 이후 정신없이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며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어머니와는 끝내 다시 연결되지 않았다. 그는 "수십 차례 전화를 시도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어머니가 무사하기만 바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26일 오후 2시 52분쯤 약 2,000가구·4,800명이 거주하는 42년 된 아파트단지의 8개 동 중 7개 동을 덮쳤던 화재가 이날 오전 10시 18분쯤 완전히 진압됐다. 불이 난 지 43시간여 만이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사망자는 128명, 부상자는 최소 79명이다. 실종자는 200여 명으로 수색 작업을 마쳤지만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다.

웡 푹 코트 맞은편에 사망자들의 임시 신원 확인 장소로 마련된 '광 푹 에스테이트 주민센터' 앞에는 가족을 잃어버린 이들의 울음으로 가득 찼다. 이곳에는 사망자들의 시신 모습이 찍힌 사진이 게시돼 있어 가족들이 직접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케빈은 "사진을 보니 누군지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며 "열심히 둘러봤지만 어머니는 없었다"고 했다. 홍콩 경찰 관계자는 "숫자를 따로 세고 있진 않지만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 찾아온다"며 "가족의 시신을 확인하고 돌아가는 분들이 절반, 끝내 확인하지 못하는 분들이 또 절반 정도"라고 상황을 전했다.

화재가 진압된 아파트 현장은 폐허로 변해 있었다. 이날 타이포 일대는 최고 기온 23도라는 따뜻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캐한 냄새가 사방을 가득 채워 곳곳에서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화재가 심했던 동과 층은 창문이 깨지고 새까맣게 그을린 내부가 훤히 드러났고, 공사에 사용된 대나무 비계와 초록색 안전그물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곳도 있었다. 비교적 피해가 적은 곳조차 군데군데 그을음이 번져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화재 현장 인근에는 "고인이 화마 속에서 부활하길 바란다"고 추모하는 문구가 적힌 꽃다발이 놓여 있기도 했다.

홍콩 정부는 화재 당일부터 인근 7곳의 임시 대피소를 열어 주민들을 분산 수용하고 있다. 그중 화재 현장에서 도보로 11분 거리에 있는 '퉁청 거리 스포츠 센터'에 이재민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스포츠 센터는 화재로 불타버렸지만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은 주민들이 먼저 찾고 있다"고 전했다.

건물 외부에서 물과 음식, 의복 등 기본 생필품을 받은 뒤 체육관 안에 자리를 잡는 식으로, 복도에는 심리 상담과 긴급 기금 신청을 돕는 부스도 보였다. 홍콩 민정사무국 관계자는 "장소가 협소해 현재 센터에는 약 100명 정도 수용하고 있다"며 "이재민들을 위한 특별 지원 기금과 자선기금 신청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정해진 기간 없이 당분간 운영될 예정이다.

<허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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