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디지털 주권의 토대, 소버린 클라우드
2025-11-20 (목) 12:00:00
강민수 을지대 첨단학부 교수 한국인공지능학회장
인공지능(AI)의 활용은 더 이상 기업의 경영 효율화에 머물지 않는다. 행정과 국방, 치안과 재난 대응 등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AI가 국가의 관리 감독 밖에서 운영된다면 정책 결정과 안보 체계는 외부 기술과 데이터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 주권에 기반한 AI 통제 체계 확립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그 출발점은 데이터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소버린 클라우드’ 구축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주요 교역 파트너들은 전통 제조업에 이어 정보통신기술(ICT)과 클라우드 시장의 개방을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 인프라 분야에서도 통상 압력이 현실화하고 있다. 따라서 데이터와 AI를 전략 자산으로 보호하기 위해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균형 전략이 필요하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AI 산업과 디지털 전환의 기반이다. 현재 시장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으나 의사 결정과 통제 권한이 해외 본사에 집중된 구조는 명백한 위험 요소일 것이다. 공공기관과 국가 기간산업의 데이터가 외국 기업의 정책과 운영 구조에 종속된다면 단순한 정보기술(IT) 산업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와 통상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버린 클라우드의 구축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소버린 클라우드의 핵심은 ‘통제 가능한 개방형 구조’를 설계하는 전략이다. 글로벌 기술을 활용하되 데이터의 저장·처리는 국내에서 수행하고, 보안과 운영 권한도 국내 기업이 담당하는 구조이다. 주요국은 이런 모델을 채택해 개방성과 주권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데 한국도 이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
클라우드 시장 개방 압력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 그러나 대응 방향은 무조건적 개방이 아닌 ‘조건부 개방’, 즉 국내 통제권을 전제로 한 개방이어야 한다. 해외 기술을 수용하되 국내 기업이 최종 통제권을 확보하는 체계를 구축한다면 국제적 갈등을 완화하면서도 데이터 주권을 지킬 수 있다. 소버린 클라우드가 이런 균형을 유지하는 국가적 전략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소버린 클라우드는 소버린 AI의 핵심 기반이다. 소버린 AI는 기술적 고립이 아닌 통제권 확보를 의미한다. 비록 외산 AI 모델을 사용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법·제도와 가치 체계에 부합하도록 관리·통제하는 게 핵심이다. 국가적 민감 사안에서 왜곡된 응답을 방지하려면 데이터와 추론 과정이 제도적으로 통제돼야 한다.
제도적 보완과 규제 개선도 필요하다. 공공기관이 민간 클라우드를 활용하려면 엄격한 보안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데이터 보호와 국가 안보 차원에서는 타당하다. 그러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비관세 장벽으로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보안과 주권을 지키면서도 과도한 절차를 줄이는 합리적 제도 재설계가 필요하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개방과 협력으로 성장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이제는 그 위상에 걸맞게 데이터와 AI라는 새로운 전략 자산을 지키면서도 글로벌 협력과 조화를 유지하는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소버린 클라우드는 바로 그 균형을 설계하는 핵심 수단이다. 글로벌 기술을 활용하되 운영과 통제의 주체를 국내 기업이 맡는 구조가, 한국이 선진국으로서 책임 있게 디지털 주권을 실현하고 새로운 국제 질서에 조화롭게 대응할 길이다.
<
강민수 을지대 첨단학부 교수 한국인공지능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