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환은행 지분 1조3천억에 인수…10년 만에 3조9천억에 매각해 3배 차익
▶ ‘한국 정부 개입으로 손해’ 6조대 배상소송…2022년 ‘4.6%만 지급’ 판정
▶ 판정취소 끌어내 최종승소…정성호 “내란 후 위기서 법무직원 혼신의 힘”

(서울=연합뉴스) 소송액이 무려 5조 원대에 이르는 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 1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시된다. 사진은 2006년 서울 역삼동에 입주해 있던 론스타. 2015.5.14 [연합뉴스 DB]
20년 넘게 이어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악연'이 한국 정부의 완승으로 마무리됐다.
13년에 걸친 국제 소송에서 국고 유출을 막기 위한 총력전을 펼친 끝에 '배상금 0원'이라는 최선의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론스타와 한국 정부 간 분쟁의 시작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실로 내몰린 은행이나 채권을 낮은 가격에 사들인 뒤 적극적으로 자산을 내다 파는 기법으로 금융계 일각에서 '무자비한 기업 사냥꾼'이라는 악명을 떨친 론스타와의 첫 대면이었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의 지분 51.02%를 1조3천834억원에 인수했다.
외환은행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줄곧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2003년에는 현대그룹 부실채권 문제, 자회사 외환카드의 적자 문제 등으로 대규모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태였다.
외환은행의 2대 주주였던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외환은행 증자를 포기하고 정부와 함께 매각을 추진했는데, 이때 인수에 나선 곳이 바로 론스타였다.
하지만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놓고 잡음이 일었다. 당시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국내 은행을 인수할 수 없었는데, 론스타는 일본에 골프장과 예식장 등 산업자본 계열회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금융당국은 2003년 외환은행 자기자본비율(BIS)이 8% 밑으로 떨어져 부실이 예상되자, 은행법 시행령상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를 인정해 론스타의 인수를 승인했다.
이후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론스타의 산업자본 요건에 대해 금융당국이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고, BIS 비율이 고의로 낮게 보고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2005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관여했던 경제관료와 은행 경영진 20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센터는 "론스타가 인수제안서를 제출한 이후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는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넘기려고 은행법을 확대해석하고, 은행 주주 자격이 없는 사모펀드에 '헐값'을 받고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이듬해 론스타의 인수를 두고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 수사 정국이 지속됐고, 론스타는 투자 자금 회수를 위해 외환은행을 되팔려는 협상을 계속했다.
2007년 론스타는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5조9천억원대의 매각 계약을 체결했지만, 한국 정부의 승인은 늦어졌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과 관련한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외환은행 재매각을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금융감독위원회의 입장이었다.
결국 2008년 HSBC가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해 매각은 무산됐고, 론스타는 2012년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지주에 3조9천157억원에 넘겼다.
거액의 차익을 얻었음에도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매각에 실패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2012년 11월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당초 더 높은 가격에 계약을 체결했던 HSBC에 매각하지 못해 손해를 봤다는 취지다.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46억7천950만달러(약 6조8천억원)에 달했다.
이후부터는 지난한 국제소송전이 이어졌다.
ICSID는 2012년 12월 론스타 제기 사건을 등록했고, 이듬해 5월 조니 비더 런던국제중재법원 부원장을 재판장으로 하는 중재 재판부 구성을 마쳤다.
재판부는 2013년 10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서면 심리를 진행했다. 정부와 론스타 양측은 증거자료 1천546건, 증인·전문가 진술서 95건 등을 제출하며 서면 공방을 벌였다.
이후 2016년 6월까지는 미국 워싱턴DC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총 4차례 심리가 진행됐다.
2020년 6월에는 윌리엄 이안 비니 전 캐나다 대법관이 새 의장중재인으로 선임되면서 같은 해 10월 화상회의 방식으로 질의응답이 이뤄졌다.
그해 11월 론스타가 우리 정부에 협상액 8억7천만 달러를 제시하고, 협상안을 수용하면 ISDS 사건을 철회하겠다는 제안이 오기도 했으나 정부는 공식 협상안이 아니라고 보고 거절했다.
이후 사건을 계속 심리하던 ICSID는 소송 제기 후 3천508일째이자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6월 중재 절차 종료를 선고했고, 같은 해 8월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1천650만달러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이는 당초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의 4.6% 수준(약 95.4% 기각)이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였다. 한 전 장관은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수사할 때 중수부 일원이기도 했다.
론스타 측은 배상 금액이 충분치 않다며 2023년 7월 판정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정부도 판정부의 월권, 절차 규칙의 심각한 위반을 이유로 같은 해 9월 판정 취소와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양측의 판정 취소 신청을 받은 ICSID는 2년여간 숙고 끝에 이날 한국 정부 승소 판정을 내렸고,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국제소송은 13년 만에 마침내 마무리됐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해 12월 3일 내란 이후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부재한 상황에서 법무부의 국제법무국장을 비롯한 담당국 직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재판관들을 설득했다"며 "그 과정에서 성원해주신 국민들과 법무부를 비롯한 관계부처 공무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120쪽이 넘는 결정문을 분석한 뒤 이르면 오는 19일 오전 별도 브리핑을 열어 구체적인 승소 이유와 경위, 향후 절차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