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호 “’신중 판단’ 의견 전달”…노만석 “이진수 차관이 ‘항소포기’ 선택지 제시”
▶ 책임론 盧 물러나면 두번째 ‘총장대행의 대행’ 체제… “대안없는 사퇴 반대” 의견도

정성호 법무부 장관(왼쪽)과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오른쪽) [연합]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결정 과정을 두고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의 설명이 엇갈리면서 '법무부 외압'을 둘러싼 의혹이 진실 공방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신중히 판단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며 외압 의혹에는 선을 그었으나,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사법연수원 29기·대검찰청 차장검사)이 검사들과 면담 자리에서 "법무부 차관에게 항소 포기 선택지를 제시받았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12일(이하 한국시간)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대장동 민간업자 사건 1심 판결에 대해 항소 시한인 지난 7일 밤까지 항소하지 않았다. 곧이어 수사팀이 윗선의 부당한 개입으로 항소하지 못했다면서 법무부 장·차관의 반대를 언급하며 논란이 일었다.
이를 두고 윗선 개입 의혹이 확산하자 노 대행은 지난 9일 "통상 중요 사건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했다"면서도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정성호 장관도 이튿날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대검으로부터) 다양한 보고를 받지만, 지침을 준 바는 없다"며 외압 의혹에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은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신중히 판단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혀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국민의힘에서는 정 장관 발언을 두고 "결국 '외압 자백'"이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행이 항소 포기 결정 전에 이진수(연수원 29기) 법무부 차관과 통화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노 대행은 지난 10일 대검 과장들과 비공개 면담 자리에서 "법무부 차관이 항소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며 몇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선택지 모두 사실상 항소 포기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 차관이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지휘권 발동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점까지 언급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지휘권 발동이라는 압박에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다.
사실상 법무부 차원의 강한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한 것으로 '자신의 책임 하에 내린 결정'이라는 애초 해명과 다소 결이 달라진 셈이다.
그는 평검사로 구성된 대검 검찰연구관들과 면담에서도 "용산과 법무부의 관계, 검찰의 어려운 현실을 고려했다", "나도 정말 힘들었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차관은 이런 외압 의혹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이 차관은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국회 법사위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에서 "노만석 차장과 전화를 한 사실은 맞다"면서도 "제가 (노 대행에게) 선택지를 드릴 수도 없고 보완수사권과 관련해서 이 사건을 연결시키는 것도 내용상 이뤄질 수 없음을 잘 아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게 사전 조율이고 협의 과정이지 수사지휘권 행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고 덧붙였다.
정 장관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법무부 차관이 검찰총장 대행에게 장관이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고 했다는데 법무부 차관에게 이런 지시를 했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말에 "그런 사실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일선 청에서도 (법무부 의견을) '지휘'로 받아들였다면 서면으로 지휘하라고 요구했을 것"이라면서 사실상 수사 지휘를 한 것 아니냔 지적에도 반박했다.
법조계에서는 법무부 장관이 직접적인 의견 제시 형식으로 구체적인 사건의 항소 여부에 개입하려 했다면 검찰청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의견과 법무부와 대검 간 통상적인 사건 관련 협의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 갈린다.
한 검사장은 "검사가 법무부에 보고해서 의견을 구하고 조율하는 건 일상적 업무"라며 "마치 이번 사건에서 법무부 보고가 이례적인 것처럼 말하는 건 '집단적 유체이탈'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장관의 총장에 대한 수사지휘 개념이 아니라 보좌진이나 검찰국을 통한 넓은 범위의 조율 성격이라는 취지다.
반면 통상적 조율 수준을 넘고, 민감한 법적 쟁점이 많은 사안에서 항소포기는 정당성을 따져볼 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전직 고검장은 "용산과 법무부를 거론한 노 대행의 발언은 법 논리 안에서가 아니라 법 논리 밖에서의 항소포기라는 인상을 주는 점에서 적절치 못하다"고 했다.
노 대행은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 이후 조직 내부에서 거센 반발과 함께 사퇴 요구가 분출하자 전날 하루 연차휴가를 내고 거취를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출근길에 거취와 관련한 입장을 밝힐지 주목됐으나 '용퇴 압박'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입을 열지 않았다.
지난 7월 심우정 당시 검찰총장 사퇴로 넉 달 넘게 수장 역할을 맡고 있는 노 대행이 물러나면 검찰조직은 '대행의 대행' 체제로 들어서게 된다. 대검 부장 중 서열상 선임인 차순길 기획조정부장이 대행 업무를 이어받게 된다.
과거 검찰 위기론이 불거졌을 때 총장, 차장이 모두 공석인 수뇌부 공백 사태는 한차례 있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임채진 검찰총장이 사직하고 문성우 대검 차장이 대행으로 재임하다 퇴임한 뒤 선임 부장인 한명관 당시 기조부장이 총장 직무대행으로 재직했다. 이후 차동민 수원지검장이 대검 차장에 임명되면서 다시 대검 차장의 대행 체제가 됐다.
2022년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 입법이 추진된 당시 김오수 총장이 사표를 내면서 박성진 대검 차장이 총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그런데 박 차장 역시 사직서를 내면서 당시 예세민 대검 기조부장이 '대행의 대행'으로 넘겨받을 뻔했으나, 박 차장이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휘부 공백 사태를 막기 위해 출근은 계속하면서 엉거주춤한 대행 체제가 일단 유지됐다.
한편 검찰청 폐지를 뼈대로 한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와중에 조타수 역할을 해온 노 대행이 물러나면 혼란이 심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면 지근거리 대검 참모진부터 시작해 검사들의 반발이 거센 상태에서 자리를 지키더라도 리더십 발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찰 내부에선 본격적인 검찰 개혁 논의를 앞둔 엄중한 상황을 고려해 노 대행이 일단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장진영 북부지검 형사3부장은 이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여당 주도의 검찰개혁 앞에 그 동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총장 대행이 정부와 여당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 개인적으로 무가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면서 "검찰 개혁의 향후 설계에 대한 명확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한 총장 대행의 사퇴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