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 개봉…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작곡 인생 그려
▶ 아내인 작사가 양인자 “위대한 분과 살았단 생각”…장사익 “태평양 같은 음악세계”

작곡가 김희갑이 28일(한국시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10.28 [연합뉴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가왕(歌王) 조용필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가 시작되자, 잠실종합운동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함성이 쏟아진다. 파격적인 내레이션 도입부로 기존 음악 문법을 깼다는 평가를 받은 명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다.
이를 비롯해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양희은의 '하얀 목련', 혜은이의 '열정', 김국환의 '타타타',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 등 숱한 명곡을 남긴 작곡가 김희갑.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다음 달 5일(이하 한국시간) 관객과 만난다.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의 주인공 김희갑이 28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정신 없이 봤다"며 "가슴이 벅차다"고 작품을 본 소감을 말했다.
'바람이 전하는 말'은 60년간 3천곡을 작곡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로 남은 김희갑 작곡가의 일대기를 그렸다.
영화는 2023년 5월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조용필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르는 장면을 시작으로 1936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희갑이 한국전쟁 중 월남하고 미8군 쇼에서 연주하는 등 그의 삶을 따라간다. 그가 작곡한 곡을 조명하며 노래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다룬다.
조용필을 비롯해 양희은, 혜은이, 김국환, 임주리, 임희숙 등 음악 작업을 같이 한 동료들이 등장해 김희갑과의 추억을 떠올리고 음악평론가 임진모·강헌이 그의 업적을 기리고 평가한다.
이는 뇌경색 후유증으로 기억이 희미해진 김희갑을 대신해 그의 삶을 되살리는 제작진의 방법이었다. 시사회에서도 음악적 파트너이자 아내인 양인자 작사가가 같이해 김희갑 대신 답변을 이어갔다. 양인자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바람이 전하는 말', 'Q' 등 400여곡을 김희갑과 같이 만들었다.
양인자는 "(영화를 보면서) 내가 참 위대한 분과 살았다고 생각했다"며 "울컥하는 장면이 여럿 있어 감동적으로 봤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희갑의 창작 원천을 묻는 말에는 "저도 모르겠다"며 "(김희갑에게) '당신은 혹시 전생에 모차르트 아니었을까' 했더니 '난 슈베르트였을 거야. 슈베르트도 가곡을 많이 썼잖아'라고 한 적은 있다"고 들려줬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작가 출신 양희 감독이 연출했다. 그는 2006년 김희갑 헌정 음악회를 통해 김희갑·양인자 부부와 인연을 맺고 이웃으로 함께하던 중 김희갑의 삶을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남편인 허욱 프로듀서와 제작을 추진했다.
양 감독은 "위대한 작곡가가 있는데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다"며 "다른 사람이 안 하면 우리가 해야겠다고 해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생님은 선입견이 없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굴레를 씌우지 않고 '어려워서 못 해'라는 게 없다"며 "본받을 만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시사회에는 소리꾼 장사익도 함께했다. 그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살던 시절 매일 새벽 북한산에 올라 소리 연습을 하다가, 김희갑이 그 소리를 들은 것을 계기로 연을 맺었다.
장사익은 "선생님 음악은 트로트, 발라드, 뮤지컬, 클래식도 있다. 태평양 같은 음악 세계"라며 "선생님이 앞서가며 우리 음악을 확대하지 않았나 싶다. 함께한 시간이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라고 돌아봤다.
김희갑은 록으로 시작해 가곡, 클래식,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선보였다. 국내 뮤지컬 사상 처음으로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명성황후' 속 넘버들도 김희갑과 양인자가 만들었다.
양인자는 "우리 노래가 참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데 감사함을 느꼈다"며 "이 노래들이 젊은 창작인들의 손끝에서 새로운 곡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곡을 가져다 쓰려면 여러 절차가 있는데 그런 것 다 생략하고 가져다 쓰셔도 좋다"며 "새로 만들어주면 더할 나위가 없고 영광으로 생각하겠다"고 미소 지었다.
양인자는 영화를 따뜻하게 봐주길 바란다는 당부도 남겼다.
"김희갑 작곡가 작품에 담긴 진정성과 사랑을 따뜻하게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양인자)
"영화 많이 봐주세요."(김희갑)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