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리 양복점 임구영 대표
▶ 1985년 한인타운 오픈·고객도 2대, 3대로 이어져
▶ ‘고객은 무대 위 스타, 나는 무대 뒤 서포터’ 일념
▶ 한인 체형에 가장 잘맞는 소재·봉제·디자인 맞춤
![[화제의 장수 기업] “양복과 함께 반백년… 세상 하나뿐인 명품 제작 자부심” [화제의 장수 기업] “양복과 함께 반백년… 세상 하나뿐인 명품 제작 자부심”](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25/10/27/20251027175454691.jpg)
올해로 개업 40년을 맞은 이태리 양복점의 임구영 대표가 ‘테일러’로서의 자부심을 설명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아버지부터 시작해 2대째 양복을 맞추는 단골손님이 찾아왔다. 임구영 대표는 눈인사를 나눈 뒤 피팅룸으로 안내했다. 결혼 턱시도를 맞추러 온 손님은 상의를 벗고 몸을 맡겼다. 줄자가 손님의 몸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다. 치수를 재는 데 거리낌은 없었다. 잰 손놀림으로 꼼꼼하게 치수를 잰 임 대표는 손님을 돌려보냈다. 두터운 신뢰 때문인지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4주 후, 손님은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양복을 입고 인생의 새로운 장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LA 한인타운에는 1985년부터 40년 동안 한인들에게 양복을 공급해온, 남가주 한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양복점이 있다. 반세기 양복 인생을 걸어온 임구영 대표의 이태리 양복점이다.
임구영 대표는 1979년, 29세의 나이에 한국에서 은행 일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입사만 하면 먹고사는데 걱정이 없다는 은행에 들어갔지만, 그는 미국에 가고 싶었다. 이민을 준비하면서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자동차 정비를 배워보려 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정비를 포기하고 양복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는데, 자동차 정비와는 달리 양복일은 손에 잘 맞았다.
임 대표는 운 좋게도 먼저 이민 와 있던 형 밑에서 한국에서 갈고 닦은 양복 기술을 이어갈 수 있었다. 6년 동안 성실히 일한 그는 1985년, 마침내 이태리 양복점의 문을 열었다. 오픈하고 6개월 후 아내가 합류했다. 한국에서 영양사일을 하던 아내는 미국으로 건너와 은행에 다니며 인정 받고 있었지만, 임 대표는 아내가 필요했다. 부부가 함께 일하면서 딸 셋의 육아는 자연스럽게 장모님이 맡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사업이 항상 순탄치만은 않았다. 1990년대 말, 한국에서 IMF가 터지면서 주인을 찾지 못한 기성복, 일명 ‘땡처리’ 재고가 쏟아졌고, 그 영향은 미국까지 미쳤다. 당시를 회상하며 임 대표는 “살다 보면 인생에서 건너지 못할 것 같은 큰 강이 눈앞에 닥칠 때가 있다. 사기를 당해 암담하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 누군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며,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인연을 만나 한국에서 생산을 시작하게 됐다. 문이 닫히고 창문이 열린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임 대표는 미국 현지 생산을 거쳐 이태리 생산으로까지 눈을 돌렸다. 맞춤양복의 수요가 줄어들어 기성복 판매도 병행했지만, 흔한 기성복이 아닌 한국인의 체형에 꼭 맞는 옷을 찾겠다는 열정 하나로 전 세계를 누볐다. 의류 판매자가 아닌 ‘테일러’로서의 자부심이었다. 임 대표는 “양복이 다 비슷해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브랜드마다 고유한 특징과 대상이 다 있다”며 “남들이 보기엔 돈 벌려고 한 일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진심으로 우리에게 잘 맞는 양복, 좋은 양복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약 12~13년 전부터 한인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브랜드의 기성복들을 선정해 안정적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양복으로 돈을 벌기도 하고 잃기도 했지만, 결국 양복이 나를 살게 했다”는 임 대표는 “지금 돌아보면 감사한 마음뿐이다. 한창 바쁠 때 아이들을 돌봐준 장모님, 힘들 때 손 내밀어준 은인, 오랜 단골들까지 감사한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올해로 개업 40주년을 맞은 이태리 양복점. 남가주 한인사회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업체로 자리 잡았지만, 임 대표는 “전문직으로 일하는 딸들이 이어받을 것 같지도 않고, 이제는 슬슬 마무리를 생각할 때”라고 담담히 말했다. 임 대표는 이태리 양복점이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내 얼굴이 새겨진 로고의 이미지를 지키면서 한인들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다. 당장 문을 닫을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어떻게 마무리할지는 차근차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
황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