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태생적으로 이민자의 나라였다. 17세기 유럽에서 건너온 청교도 이민자를 시작으로,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 19~20세기에 들어온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이민자까지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모여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다인종적인 사회를 이뤘다.
특히 1965년 이민법 개정 이후 다문화 사회는 급속히 확대되었고, 미국은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기회의 땅’이라는 상징성을 갖게 됐다.
한인 이민사 역시 이 흐름 속에 있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시작된 한인 이민은 2~3세대를 거치며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뿌리내렸다. 미국의 교육 기회와 경제적 환경을 활용해 성공을 일군 수많은 사례는 아메리칸 드림이 허상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보수주의의 아이콘이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조차 아메리칸 드림의 확장에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1986년 이민개혁법(IRCA)에 서명하며 불법체류자 약 300만 명에게 영주권을 부여했다. 이 조치는 미국의 문이 여전히 이민자에게 열려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퇴임 연설에서 레이건은 “자유와 기회를 갈망하며 새로운 나라에 오는 이들이 미국을 영원히 젊고 창의적으로 만든다”고 강조했다. 아메리칸 드림은 단순히 부와 성공을 쫓는 환상이 아니라, 자유·참여·공동체 책임이라는 가치로 확장된 개념이었다.
그러나 2025년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 아래, 그는 국경 장벽 건설, 망명 금지, 불법체류자 무자비한 단속, 유학생과 전문직 비자 제한 등 강경한 이민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H-1B 전문직 비자에 연간 10만 달러 수수료를 부과하고, 부유층을 겨냥한 ‘골드 카드’ 프로그램을 내세운 조치는 사실상 상류층 선별 이민만 허용하는 제도다. 결과적으로 일반 이민자와 소수계 커뮤니티에 불안과 제약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 차이는 극명하다. 레이건 시대의 아메리칸 드림이 새로운 기회를 향한 희망을 심어줬다면, 트럼프 시대의 MAGA는 그 꿈 자체를 훼손한다. 불법체류자뿐 아니라 합법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이민자들까지 위축시키며 경제적 활력과 사회적 다양성을 해친다. 실제로 1983년 16세 때 미국에 이민 와 한인 최초의 연방 이민법원 판사가 된 김동수 판사가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해임된 사건은 상징적이다. 그는 “미국은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토로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진정으로 다시 위대해지려면 경제적·사회적 통합과 기회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과거의 신화가 아니라, 매 세대 새로운 이민자가 경험을 통해 갱신하는 현재진행형 가치다. 한인을 비롯한 이민자들이 교육·경제·문화에서 쌓아온 성취는 그 증거다.
트럼프의 강경 정책 속에서도 이민 공동체가 남긴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자산은 여전히 미국 전체의 중요한 자원이다. 미국의 위대함은 배제가 아니라 포용과 조화를 통해 유지된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왜 이민자 개개인의 꿈 없이는 미국이 다시 위대해질 수 없다는 단순한 진실을 외면하는가. 강경하고 배타적인 이민정책은 미국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뿐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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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부국장대우·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