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말 APEC 계기 방한 앞두고 트럼프 결단 주목
▶ 노벨상 기대 트럼프, 비핵화 명기없는 제재해제 가능성에 우려도 존재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만났던 트럼프와 김정은 [로이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이 북한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면 북미대화를 할 수 있음을 피력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 주목된다.
오는 10월 31일(이하 한국시간)부터 이틀간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상황에서 두 사람 사이의 4번째 대면이 이뤄질지에 외교가의 관심이 집중되게 됐다.
김 위원장은 2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에서 연설하며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고 북한 관영매체들이 22일 보도했다.
동시에 김 위원장은 "핵을 포기시키고 무장해제시킨 다음 미국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세상이 이미 잘 알고 있다"며 "우리는 절대로 핵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제재 풀기에 집착하여 적수국들과 그 무엇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협상 따위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입장에서 제재 해제가 최우선 과제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부분적 비핵화 조치를 하겠다는 북측 제안을 거절하면서 '노딜'로 끝났던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때와는 입장과 위상이 달라졌다는 점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입장 표명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처음으로 북미대화에 대한 개방적 입장을 직접 피력하면서 '비핵화 포기'라는 조건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1차적인 관심은 10월말 경주 APEC 정상회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계기까지 마련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제안에 호응함으로써 2019년 6월에 이어 또 한번의 '판문점 북미정상 회동'이 성사될지 여부에 쏠린다. 만약 판문점 회동이 성사될 경우 그것을 발판 삼은 트럼프 2기 북미대화가 본격 전개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집권 2기 출범 이후 각지의 분쟁 중재를 시도하며 노벨평화상에 대한 기대를 보여온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 정전상태인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북미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때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올해 그를 만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러 군사협력 강화, 이란의 우라늄농축시설 재건 지원을 포함한 이란과 북한 간 협력 등을 막기 위해서도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이유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관건은 김 위원장이 제안한 '비핵화 포기'라는 전제조건을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할지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출범후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국가)로 잇달아 부르며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한편, 행정부 차원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목표는 유지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비핵화 포기'를 대화의 조건으로 제시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 북미정상외교의 장을 만들기 위해 비핵화 원칙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등의 유연성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존재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 종식이라는 두개의 난제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미간 적대관계 종식과 관련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비핵화의 '바'(bar·기준)를 낮추거나 비핵화를 장기적 목표로 돌린 채 일단 북핵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북미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한국 이재명 정부도 북핵에 대해 '중단'→'축소'→'비핵화'의 단계적 해법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대화 과정에서 비핵화 목표를 명시하지 않은 채 대북제재를 대대적으로 해제해주고,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합의를 할 경우 결과적으로 북한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과 같은 국제사회의 비공인 핵보유국 클럽에 사실상 입성하게 된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앞으로 북미 사이에 물밑 접촉 또는 정상간 서신외교가 추진될 가능성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미간 긴밀한 대북정책 조율의 필요성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