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은 지금⋯] 자기 변화를 거부했던 맘루크의 몰락

2025-09-16 (화) 07:46:35 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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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년, 노예 출신 병사 집단인 맘루크가 쿠데타를 일으켜 이집트에 왕조를 세웠다. 이들은 아이유브 왕조가 기르던 최정예 전사들로, 혹독한 훈련을 거쳐 기마 전술에 능한 최고의 전사 집단으로 성장했다.

건국 10년 만인 1260년, 맘루크는 바그다드를 멸망시키며 이슬람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세계 최강의 몽골군을 아인 잘루트에서 전멸시키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 위대한 승리는 맘루크의 통치를 공고히 했고, 그들은 250년 동안 이집트를 지배했다.

그러나 맘루크의 영광은 영원하지 않았다. 1517년, 맘루크는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반나절 만에 멸망했다. 그들의 몰락은 단순히 군사적 패배가 아니었다. 15세기 말, 포르투갈이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를 개척하면서 맘루크가 독점하던 홍해 무역의 중요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막대한 무역 수입이 사라지자 국가 재정이 악화되었고, 여러 부족 출신으로 이루어진 맘루크 내부의 결속력은 급격히 무너져 권력 다툼이 심화되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멸망 원인은 시대의 변화를 외면한 자만심이었다. 맘루크는 총과 대포라는 새로운 화약 무기가 일반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전통적인 기마 전술이 최고라는 오만에 빠져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최신 화력으로 무장한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 부대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맘루크는 경제적 위기를 부의 불공정한 분배로 해소하려다 내부 분열을 키웠고, 변화하는 세상을 외면한 채 과거의 영광에만 매달리다 결국 몰락의 길을 걸었다.

놀랍게도, 오늘날 미국의 모습에서 맘루크의 몰락을 떠올리게 된다. 맘루크가 그랬듯, 미국 역시 광대한 영토와 막강한 경제력,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세계를 호령하며 ‘초강대국'이라는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미국도 지금은 맘루크가 겪었던 문제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진 이유가 싼 인건비를 찾은 해외 이전이라는 현실을 외면한 채, 이민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내부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동맹국들이 무역 적자의 원흉이라며 관세를 올리고 돈을 요구하는 행태는 불공정한 경제 정책으로 힘없는 부족들의 불만을 키웠던 맘루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새로운 기술과 노동력을 배척하는 시대착오적 정책이다. 한국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며 미국에 공장을 세우려 해도, 고급기술자에게 합당한 비자를 주지 않고 오히려 체포하여 범죄자 취급을 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결국 외국인 기술자들이 미국을 떠나게 만들고,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미국 교육 시스템 역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이 기본적인 계산조차 어려워하는 상황에서, 첨단 기술 기반의 제조업 노동력은 허망한 꿈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금의 제조업은 더 이상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이다.

미국이 다시 미래로 나아가려면, 맘루크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우월한 미국인이라는 근거없는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 특히 일자리 문제를 이민자들 때문이라며 국민들을 선동하며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멈추고, 공정한 부의 분배와 교육의 질 향상을 통해 사회적 결속력을 높여야 한다.

외부적으로는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기술과 인재를 포용하며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오직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올바른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정치인을 선택할 때, 미국은 맘루크의 비극적인 몰락을 피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을 것이다.

<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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