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스프링복은 미련하게 죽는다’

2025-08-26 (화) 07:54:16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크게 작게
아프리카에서 서식하는 스프링복(springbok)은 미련하게 죽는다. 이것들은 혼자 초원에서 풀을 잘 뜯어 먹다가 풀이 조금 적어지면 불안한 경쟁 심리에 사로잡힌다. 돌연 앞에 있는 풀을 먼저 차지하려고 서로 다투며 앞서 나가기 시작한다.

그 순간 주변에 흩어져 있던 무리가 연쇄 자극을 받고 흥분된 거대한 군집을 이룬다. 너도나도 경쟁에 뛰어들어 정신없이 앞을 향하여 내달린다. 달리다가 절벽을 만나도 그 자리에 멈춰 서지 못한다.

뒤에서 쫓아오는 동료들이 밀어붙이는 힘 때문에 절벽으로 떠밀려 몰사하고 만다. 스프링복은 죽을 때 너무 미련스럽다. (휴 카르디의 ‘Hunt’ 중에서)


미국 연방 항공청(FAA)에서 제정한 항공기 탈출 ‘90초 룰’이라는 규정이 있다. 긴급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탑승하고 있는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90초’이내에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안전 규정이다.

보잉 757-400형 비행기의 최대 탑승 인원은 568명이다. 사용 가능한 탈출구 6개만을 가지고 90초 이내에 전원 탈출이 가능할까. 모의 훈련 결과는 불가능한 것으로 나왔다. 568명의 승객이 서로 먼저 탈출하려는 경쟁심으로 탈출구로 몰릴 땐 많은 희생자가 속출했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 서로 경쟁하지 않고 남에게 양보하는 경우에는 승객 전원이 탈출하는 데 63초가 소요되었다. 90초 이내에 모두 탈출하고도 시간이 남아돌았다.

‘경쟁 심리’와 ‘집단이기주의’의 격랑이 밀려올 때, 경쟁심을 내려놓고 천천히 온유하게 사는 모범을 보여준 사람이 있다. 다윗이다. 다윗은 불같이 성급한 사울이 죽이려고 달려들 때 경쟁 심리에 휩쓸리지 않았다. 피해 다녔다. 때로는 절호의 기회 앞에서 무모할 정도로 신중할 때도 있었다.

사울이 죽고 난 다음의 일이다. 인기가 충천한 다윗 주변에 군중이 벌떼처럼 모였다. 군중이 다윗을 우상처럼 떠받들며 이스라엘 12지파의 왕이 되라고 환호했다. 하지만 다윗은 충동적 군중심리에 흔들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때가 올 때까지 7년 6개월을 헤브론에서 기다리며 지혜와 내공을 쌓았다.

왜 다윗이 10지파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을 향한 돌진을 단호하게 제어했던 그 유명한 헤브론 결단이 옳았을까. 첫째, 사울은 죽었지만 사울 왕가의 후손들과 사울의 충신들은 아직도 건재하고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재기를 호심탐탐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중 다윗은 반 다윗 세력과 주민을 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둘째, 북 이스라엘에 속한 야베스 주민과 사울 왕가와의 각별한 유대관계 때문이다. 만일 이 시기에 다윗이 야베스 주민을 품지 못하면 다윗 왕가는 12지파를 다스리는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게 된다고 믿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울의 사후(死後), 다윗에게는 북 이스라엘을 순리로 평정할 때 까지 신중하게 인내하는 지혜가 꼭 필요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헤브론에 머물며 기다리라”는 응답을 받은 다윗은 과연 지혜로웠다.


당신은 리더인가. 어떤 공동체나 군집(群集)에 소속되어 있을 지라도 승자의 공적을 앞에 두고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내심을 시기적절하게 발휘하라. 아프리카 초원의 스프링복처럼 무모한 경쟁 심리에 휩쓸리지 말라.

혹은 자신의 보호심리에 경도되지도 말라.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군중 모두를 구하는 다윗의 지혜를 얻으라.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