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윌셔에서] 회색이 좋다

2025-07-24 (목) 12:00:00 허경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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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이 검은 편인 나는 검은색이나 감색을 즐겨 입는다. 하얀 드레스를 나풀대며 걷는 사람을 보면 나도 화사할 것 같아 입어보지만, 그때마다 거울 속의 나는 평소보다 더 어두운 얼굴로 찰나의 꿈을 무참히 깨 버리곤 하였다. 꾸미는 것에 무관심한 편이라 그런 상황에서도 피부를 더 가꾸려 들던가 어떻게 하면 옷맵시를 낼까 고민해 보지 않았다. 그저 선머슴처럼 다시 검은 색이나 감색을 걸쳐 입고 덜렁덜렁 살아왔다. 젊음이 재산이었을까? 그때는 그래도 보기 싫지는 않았다.

머리 숱이 점점 없어지고 염색하지 않으면 봐 줄 수 없는 나이가 되니 이젠 옷가지에도 신경이 쓰인다. 거울 앞을 스쳐 지날 때 문득문득 엄마의 모습이 그 안에 있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는데 옷이라도 젊게 입지 않으면 그대로 엄마의 70대 모습이 되어버릴 것 같다. 과감하게 오렌지색도 입어보고 초록색도 입어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색이 내 얼굴빛과 아주 잘 어울리는 것을 발견했다. 회색은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검은색, 감색의 옷들과도 잘 어울렸다. 검은 셔츠와 바지를 입고 짙은 회색 카디건을 걸치면 원래 옷을 잘 입던 사람처럼 옷맵시가 났다.

젊어서는 분명하던 기준도 나이가 들면서 흐릿해진다. 옳은 것만 선호하고 옳지 않다고 버렸던 것들에게서 외면당한 아픔을 볼 때가 있다. 내가 그 상황에 부닥쳤다면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처해 보지도 않은 상황이면서도 섣불리 판단하고 비난했던 기억이 낯을 뜨겁게 할 때가 있다.


현실은 결코 흑과 백일 수 없다는 진리를 그 안에서 본다. 현실은 회색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소가 모이고 모여 우리의 시간 속으로 들어온다. 내 언행의 기초가 되고 일상의 색채를 결정한다. 사람들과 주고받는 미세한 감정들이 내 안의 오래된 상처를 만나 또 다른 나를 만들기도 하고 뜻밖의 다정한 손길에 그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문명의 발달로 손안에 쥔 전화기 하나로 모든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 함께 모여 땀 흘리며 일하고 밥을 나누어 먹고 다투고 사랑하면서도 손과 손이 서로를 지탱하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같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몰라 서로의 다름을 논의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힘들어한다. 나와 다르면 무조건 적이고 같으면 친구다. 무엇이든 흑백으로 나누는 이 사회가 때론 무섭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회색이 되고 싶다. 흑과 백의 중간에 서서 호통 소리에 숨죽인 목소리를 듣고 싶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자리에 선 사람도 한 번쯤은 그 사연을 들어보고 싶다. 그러나 내 안에는 옳고 그름을 서둘러 판단하고 비판하는 흑과 백이 단호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것들은 많은 경우 약자를 돌아보지 않고도 당당히 살 수 있도록 나를 두둔한다.

영화 속의 이야기에 마음이 젖을 때 그 뜨거운 눈물로 내 안의 흑과 백을 섞고 싶다. 잘 섞인 회색으로 영화 속의 사랑을 현실에 퍼 나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회색을 꿈꾸는 오늘, 회색 카디건을 걸치며 가만히 소리 내 말해본다. 나는 회색이 좋다.

<허경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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