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하늘은 믿기지 않을 만큼 높고 바람은 바삭한 낙엽처럼 가볍고 선선했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에는 단풍이 능선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이 겹겹이 포개지며 산의 윤곽을 부드럽게 감쌌다. 대한민국의 가을은 아름다움이 색이 되어 흐르는 계절이다.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가을을 보았지만, 단풍만큼은 역시 우리나라가 으뜸이다. 캐나다의 메이플로드나 미국 뉴햄프셔의 화려한 색도 인상적이지만, 한국의 단풍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와 마음을 어루만지는 정서가 담겨 있다. 사찰 처마 밑에 조용히 매달린 단풍잎 하나, 돌계단에 소복이 내려앉은 은행잎 하나에도 오랜 세월과 우리네 삶의 풍경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단풍 위를 날다⋯ 춘천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
강원도 춘천.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에 오르자마자 말문이 막혔다. 거울처럼 잔잔한 의암호 위로 케이블카가 천천히 고도를 높이자, 호수를 감싸 안은 단풍이 능선을 따라 물결치듯 흐른다. 붉게 물든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마치 누군가 “어서 오십시오” 하고 손짓하는 듯하다. 호수와 산, 바람과 하늘, 그리고 단풍. 모든 것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맞닿은 순간, 모두가 고요하게 숨을 들이마신다. 눈앞의 풍경을 마음 깊이 찍어두겠다는 듯이. 추억이야말로 사진 한 장보다 더 오래, 평생 잊히지 ㅇ낳을 기억으로 남으리란 걸 알기에…
■홍천 수타사 & 황금빛 은행나무숲
삼악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홍천의 수타사는 깊은 산자락에 몸을 기댄 천년 고찰이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자, 단풍으로 불타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돌계단엔 알록달록한 단풍잎이 겹겹이 쌓여, 마치 붓으로 칠한 수묵담채화처럼 보인다. 붉은 단풍 너머 전각들이 조용히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하다. 고요히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씻기듯 맑아지고, 단풍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마치 오래된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는 듯하다. 수타사의 가을은 자연과 사색이 만나는, 고요한 명상 같은 시간이다.
가을에 황금빛을 찾고 싶다면 홍천 은행나무숲만 한 곳이 없다. 그곳은, 말 그대로 ‘황금빛의 숲’이다. 수천 그루의 은행나무가 빚어낸 황금빛 터널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바람이 불면 은행잎들이 빛처럼 흩날린다. 땅 위엔 이미 부드러운 은행잎 융단이 깔려 있고 걷는 발걸음마다 사각사각, 마치 오래된 책갈피를 넘기는 듯한 소리가 정겹다. 누구든, 잠시나마 동화 속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산이 붉게 숨 쉬는 설악산
설악산 한계령 휴게소, 해발 1004미터 지점에 다다랐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강원도 인제와 양양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 고갯길은 가을이면 단풍이 산 전체를 뒤덮는다. 끝없이 이어진 설악의 능선 위로 붉은 단풍이 불처럼 타오르고 그 붉음 사이사이로 노란 자작나무, 갈색 신갈나무가 조화를 이루며 거대한 색의 물결을 만들어낸다.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본 계곡 아래 주전골은 단풍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와 함께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신비의 물길’이라 불리는 이곳은 오색약수터에서 시작해 만경대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다. 옥처럼 맑은 계곡물, 바위틈에서 피어나는 이끼, 물속을 따라 유영하듯 흔들리는 나뭇잎의 그림자, 바람에 실려 오는 흙과 낙엽 섞인 냄새까지… 모든 것이 자연이 오롯이 준비한 가을의 무대였다.
■고요한 평창 월정사 전나무숲길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마치 또 다른 세계를 연상시킨다.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전나무 사이로 부드러운 빛이 스며들고, 나무 사이사이마다 붉은 단풍이 포인트처럼 박혀 있다. 전나무의 은은한 향이 맴돌아서일까? 이 길은 걷는 이의 마음까지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가을의 절정, 구룡사와 내장산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구룡사와 전라북도 정읍의 내장산이다.
구룡사로 향하는 산길은 가을이면 온통 은은한 단풍 향으로 가득하다. 백 년 된 고찰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은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이 바닥에 두텁게 쌓여, 마치 눈밭을 걷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걷는 발걸음마다 ‘바스락’ 소리가 고요한 산중에 잔잔히 퍼져나간다. 구룡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가을이면 붉고 노란 단풍이 사찰의 고즈넉한 전각과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특히 사찰 앞 작은 연못에 비친 단풍잎의 물결은 그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신비로운 장면이다.
전라북도 정읍의 내장산은 말이 필요 없다. ‘한국 3대 단풍 명산’ 중 하나로 꼽히며, 가을철이면 약 1300헥타르에 달하는 광활한 산 전체가 붉은 단풍으로 물든다. 내장산의 대표적인 단풍길인 내장사 입구 단풍터널은 나뭇가지가 길 위에서 만나 터널을 이루는 형상으로, 걷는 이들에게 압도적인 색채의 향연을 선사한다. 바람이 불면 수없이 많은 단풍잎들이 하늘을 떠돌며 빙글빙글 춤추듯 어깨 위에 내려앉고, 그 순간마다 여행자들의 얼굴에는 감탄과 경외, 때로는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
■가을, 모국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계절
왜 모국의 가을이어야 할까? 대답은 단풍 그 자체만이 아니다. 가을의 대한민국은 하늘이 높고 맑고, 바람은 부드럽고 선선하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어도 지치지 않는 날씨다. 거기다 닭갈비와 막국수, 들깨 백숙, 약선요리 같은 계절 음식이 피로한 몸을 달래주고 어머니 손맛 같은 위안을 건넨다.
대한민국의 가을, 그곳엔 기다리던 풍경과 그리움이 있다. 몇 장의 사진으로 남는 여행이 아니라, 기억으로 스며드는 여정이다. 단풍은 결국 떨어지겠지만, 그 순간의 기억은 우리 마음 속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여행팁
미주 최대·최고의 한인 여행사인 US아주투어는 올가을 ‘모국 단풍(7일, $1699)’과 ‘일본 삿포로+모국 단풍(11일, $3299)’ 상품을 새롭게 출시했다. 출발일은 각각 10월 22일, 31일/ 10월 18일, 27일이다. 전 일정 특급호텔, 입장료 및 식사, 한의학 대가 이광연 한의학 박사의 건강 진료 및 천연 파스가 특전으로 포함돼 있다. 더 자세한 내용 및 예약 문의는 전화로 가능하다.
■문의: (213)388-4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