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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이그나티우스 칼럼] 대통령은 완수한 일로 평가받을 것

2025-07-09 (수) 12:00:00 데이빗 이그나티우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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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밀턴 브래들리사가 “트럼프: 더 게임”을 출시했다. 판촉 구호는 “승리나 패배가 아니라 당신이 이겼느냐가 중요하다”였다.

그러나 지난 수 십년간 도널드 트럼프가 해왔던 숱한 사업이 그러했듯 이 역시 시작은 화려했지만 마무리는 미약했다. 출시 첫 해의 매출은 예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파커 브라더스가 2004년 “당신은 해고야”라는 광고문구를 덧붙여 재출시했지만 판매는 여전히 부진했다. 지금 이 게임은 수집가의 아이템으로 전락했다.

트럼프는 대담한 출발로 자신의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두 명의 칼럼니스트는 그의 야심찬 출발에 찬사를 보냈다. 페기 누난은 5개월간의 압도적 선전 끝에 “그가 위대한 대통령의 반열에 들기 위한 게임에 뛰어들었다”며 기대감을 표출했다. 월터 러셀 메드는 사람들이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두고 입방아를 찧었듯 존재감을 과시하길 좋아하고 권력에 굶주린 트럼프는 “모든 장례식의 시신, 모든 결혼식의 신부, 모든 유아세례식의 아기가 되길 원한다”고 지적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확연한 특성이 지니는 분명한 약점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출발은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화려한데 결승선에 도달하는데 늘 어려움을 겪는다. 그의 전반적인 사업 경력이 보여주듯 트럼프는 종종 자신의 개인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세간의 이목을 끌만한 과감한 투자를 하지만 성공적인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트럼프의 대담성과 기교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겉으로는 화려한 승리처럼 보이는 것들 조차 빛 좋은 개살구인 경우가 많다. 트럼프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으로 이름지은 크고 추한 예산안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주 상원 조정안이 하원을 통과하며 법제화과정이 마무리됐으나 이같은 “성공”의 대가로 공화당 상·하 양원 의원들은 2026년 중간선거에서 호된 정치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거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부유층 세금감면 연장에 필요한 재원마련을 위해 사회적 취약계층의 안전망인 메디케이드와 푸드스탬프 예산에 대대적인 칼질을 가했기 때문이다.

“마무리지을 수 없는 일은 시작하지 말라”는 격언이 딱 들어맞는 가장 최근 사례는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벌인 전쟁에 끼어든 트럼프의 무력 개입이다. B-2 폭격기를 보내 이란의 지하 핵 벙커를 공격한 것은 테헤란의 핵 무장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취한 조지였다. 그는 미국이 지닌 군사력을 대담하게 사용했고 이를 통해 미국의 신뢰도와 억지력을 강화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그의 군사작전이 이란 핵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진 못했다. (벙커버스터 전략을 검토했던) 세 명의 전직 대통령들은 트럼프에게 폭격은 이란 프로그램을 지연시킬 뿐이라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이란의 핵 개발을 중단시키려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집행할 수 있는 검증가능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외교적 전략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듯 보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란과 협상을 시작했으나 금방 조급해졌다. 한편 지난달 이란에 대한 파상공세에 나선 이스라엘은 테헤란 영공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자신이 승자로 주목받길 원하는 트럼프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요청을 받아들여 B-2 출격을 단행했고 공습 이후 이란내 지하벙커의 파괴정도를 두고 한 주 내내 의미론적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이란 비핵화 실현을 위한 외교적 경로를 잦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네타냐후 정부는 이스라엘 카츠 국방장관의 “집행 정책”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말해 이란의 핵 개발 재개를 막기 위해 몇 개월 혹은 몇 년마다 한번씩 미국 폭격기와 이스라엘 전투기로 핵시설로 의심되는 이란내 구조물을 정밀타격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가자 지구의 하마스를 상대로 이스라엘이 20여년간 구사해온 이른바 “잔디깎기” 전략과 일치한다.

트럼프는 과감하게 초대형 관세전쟁을 일으켰지만 아직껏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그는 “해방의 날”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모든 무역대상국들을 상대로 관세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에서 곧바로 아우성이 터져나오자 그는 7월 9일까지 90개국과 협상을 완료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시행을 연기했다. 7월 9일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부분의 무역협정은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일본과 유럽의 충실한 우군들은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고율 관세에 따른 성장둔화와 물가상승 우려한다. 사실 트럼프 팀은 협상에 필요한 인내심과 역량을 결여한 듯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트럼프의 마무리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심각한 사례다. 이제 “살육전”을 끝내야할 시간이라는 그의 진단은 절대적으로 옳다. 트럼프는 이번에도 요란스런 팡파레를 울리며 종전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절충 거부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트럼프는 진지한 개입을 회피했다. 벌써 수 차례에 걸쳐 모스크바에 제재의 으름장을 날렸지만 지금껏 단 한번도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서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숱한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시설물이 파괴되고 있다. 지금으로선 트럼프가 조만간 진지한 자세로 문제해결에 임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다. 트럼프는 의심할나위 없는 탁월한 마케팅 전문가이자 질서 교란자이다. (트럼프 대학, 트럼프 셔틀, 뉴저지 제너럴스와 플라자 호텔 등) 떠들썩하게 시작했다가 거덜낸 일런의 사업을 통해 그는 자신의 빅 아이디어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트럼프는 불리한 거래를 피하기 위해 종종 협박과 벼랑끝 전술을 구사해왔다. 그리고 그는 지금 국내외에서 그의 길을 막아서는 정치인들을 상대로 동일한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란 중요한 일을 시작한 것만으로는 점수를 얻지 못한다. 시작한 일을 성공적으로 마쳐야만 칭찬과 인기를 얻게 된다. 그때에야 비로소 누난이 말한 위대성에 도달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건물의 전면 로비가 제아무리 휘황찬란하다 해도 공사가 반쯤 끝난 상태로 버려진 고층건물에서 살기원하는 사람은 없다.

<데이빗 이그나티우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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