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에서] 엄마 생각
2025-06-12 (목) 12:00:00
허경옥 수필가
날이 채 밝지 않은 시각에 새소리들이 요란하다. 어떤 소식을 물어다 전하느라 저리 바쁠까? 창밖을 내다보니 몇 마리의 작은 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 종종걸음으로 옮겨 다니며 재잘거리고 있다. 무슨 소식을 저리 많이 물고 왔을까? 과묵한 나무들은 시끄럽다 타박하지 않고 오히려 흐뭇한 미소로 들어주고 있는 것 같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엄마를 찾았다.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집안일을 혼자 감당하던 엄마는 늘 분주했다. 나는 가방을 대청마루에 던져 놓고 엄마를 따라다니며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 해 주곤 하였다. 엄마는 일손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귀는 항상 내게 열어 두셨다. 내가 하는 말마다 아고 그랬구나! 그래서? 저런 쯧쯧쯧 하며 장단을 맛깔스럽게 넣어 주셨고 점점 더 흥이 난 나는 엄마를 부엌으로, 마당으로, 옥상으로 쫓아다니며 쉬지 않고 쫑알거렸다.
이야깃거리가 다 떨어지면 난 수업 시간에 배운 학과 내용을 선생님 흉내를 내며 엄마에게 전했다. 학교 문턱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어깨너머로 깨친 한글로 겨우 문맹을 면한 엄마는 내가 전해주는 지식에 늘 귀 기울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하늘에 떠 있는 별의 하나라던가 해의 주변을 지구가 돌고 있다는 말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엄마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는 오빠들이 놀다 던져놓은 농구공과 야구공 등을 주워다 대청마루에다 늘어놓고 공전과 자전을 설명했다. 바쁜 일손을 멈추고 진지하게 듣던 엄마의 얼굴에 서서히 차오르던 그 경이로움은 지금도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재래식 한옥이었던 우리 집은 엄마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밤새 냉골이 될까 밤이 늦도록 우리들 방을 돌며 연탄불 단속을 하셔야 했고, 자주 드나드는 아버지 손님을 위해 부엌의 높은 턱을 뒤뚱거리며 넘나들어야 했다. 여섯 식구가 벗어 놓는 옷을 모두 손빨래로 해야 했고 새벽부터 서너 개의 도시락을 싸고, 명절과 제사음식도 손수 준비해야 했다.
빨래 바구니 가득한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고 단추 하나 누르고 돌아서다가, 전화기로 청소기에게 물걸레질 하라는 명령어를 넣고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 문득문득 엄마 생각을 한다. 여자는 마치 남자를 위한 소모품 같았던 시대에 태어나 학교 교육도 받지 못하고 일제 강점기에 청년기를 보냈던 엄마. 해방이 되었지만, 곧 육이오 전쟁이 발발해 이곳저곳으로 피난 생활을 하다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수감된 아들을 일년 넘게 지켜봐야 하는 고통의 시간도 보냈다.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아내며 강하게 만들어졌던 엄마. 엄마의 거친 하루가 손바닥 지문 사이사이에 거뭇거뭇한 상처로 남아있었다. 시집가면 평생 할 일이라고 집안일은 손도 못 대게 하면서도 엄마는 내 스타킹만은 나보고 빨라고 하셨다. 엄마의 거친 손바닥에 스타킹이 다 뜯긴다고. 미안한 듯 어정쩡 웃던 엄마의 복잡한 표정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을 아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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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옥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