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평선] 성군과 폭군 사이

2025-05-22 (목) 12:00:00 이동현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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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열망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한 일도 없이 2009년 노벨평화상을 탔는데, 노벨위원회가 공정하지 못해 ‘성군’인 자기에게는 상을 주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집권 1기에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관계 개선을 끌어낸 아브라함 협정을 중재하는 등 수상 자격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중재로 노벨평화상을 타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 반면에 전 세계는 트럼프 포비아로 불안에 떨고 있다. 무차별적 관세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피멍이 들고 있는데 그칠 줄을 모른다. 100%가 넘는 관세 폭탄을 주고받던 중국과 ‘상호관세 90일 유예’에 전격 합의해 안도감을 준 것도 잠시, 약값 인하를 요구하며 유럽을 향한 관세전쟁을 선포해 전 세계를 불확실성의 공포 속으로 다시 몰아넣고 있다.

■ 법·질서를 바로잡고, 윤리와 도덕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공자의 ‘덕치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트럼프는 세계의 폭군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그는 종종 마키아벨리스트로도 규정된다. 정치는 도덕의 영역이 아니고,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점에 있어서 트럼프의 행동 양식은 마키아벨리즘에 부합하기도 한다.

■ 트럼프식 권모술수는 과격한 말로 위협하고 남의 손을 빌려 목적을 달성하는 식이다. 예컨대 불법이민과의 전쟁을 소리 높여 떠들지만 의외로 그 수는 적다. 1기 때 불법이민 추방 인원은 150만 명이다. 오바마 1기 290만 명, 바이든 4년 190만 명보다 한참 낮다. 멕시코나 캐나다가 트럼프의 위협에 자진해서 월경을 막은 덕이다. 관세전쟁도 다르지 않다. 트럼프는 관세로 위협해 미국의 최대 현안인 펜타닐 문제를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에 떠넘겼다. 전 세계 주요 기업의 대미 투자를 압박해 제조업 부활의 숙제를 풀고 있다. 고질적 의료 문제는 유럽에 떠넘길 태세다. 모두 미국민이 조속한 해결을 원한 숙원이라, 세계의 폭군이 미국의 성군으로 추앙 받을지 두고 볼 일이다.

<이동현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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