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기다렸던 축제인가. 6월 3~10일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 페스티벌’은 한국의 눈부신 클래식 음악, 그 최전방의 소리를 들려주는 잔치요 향연이 될 것이다.
LA필하모닉과 같은 주류 오케스트라가 K-클래식을 온전히 조명하는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원래는 2021년 6월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비드 팬데믹 때문에 취소됐다가 4년 만에 실현되는 것이다. 취소됐을 당시는 무척 속상하고 실망스러웠지만 시간이 흘러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날이 갈수록 더젊고 재능 있는 천재들이 튀어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4년 전 프로그램에는 지휘자 성시연, 소프라노 황수미, 피아니스트 문지영,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포함돼있었고 작곡가 윤이상, 백병동, 강석희의 작품이 연주될 예정이었으나 새로 기획된 프로그램에는 이들이 모두 빠졌고 새로운 신예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 페스티벌은 한국 현대음악의 대모인 작곡가 진은숙의 작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절대적 위상을 지닌 진은숙은 LA필하모닉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맺어왔는데 그 인연이 서울 페스티벌의 기획으로 이어진 것이다.
진은숙은 2006년 LA필의 에사 페카 살로넨 시절에 ‘칸타트릭스 소프라니카’를 미국 초연했고, 2009년 구스타보 두다멜이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첫 음악회에서 그의 ‘생황 협주곡’을 연주한 바 있다. 2011년에는 ‘솔로 타악기를 위한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가, 2013년에는 LA필이 위촉한 ‘그래피티’가 초연됐으며, 2015년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디즈니홀에서 공연되어 격찬 받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012년 서울시향의 북미주 투어에도 동행하여 교민들과 만난 적이 있고, 가장 최근에는 2019년 ‘스피라-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토’가 여기서 세계 초연되었다.
진은숙은 12년 전 인터뷰에서 “세계 여러 오케스트라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LA 필은 오래 전부터 가족 같고 편안하다”면서 “나의 곡을 좋아하고, 같이 일하기 원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LA 필과 가장 많이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번 서울 페스티벌은 4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있는데 여기 참여하는 지휘자, 작곡가, 연주자의 숫자만 50명이 넘는다. 모두 ‘진은숙 키드’라고 해도 좋을 세계 최정상 수준의 영 뮤지션들인데 이중 적지 않은 사람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곡가 김택수, 이규림, 박선영, 서주리와 비올리스트 이유라, 플루티스트 김유빈이 그들이다.
서울 페스티벌을 앞두고 공부하면서 특별히 놀란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한국인 작곡가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었다. 이번 축제에서 LA필이 위촉하여 세계 초연되는 한국 작곡가의 작품은 무려 6곡이나 된다.
전예은의 바이올린 협주곡, 배동진의 ‘사색-부드럽고 거친’(reflective-silky and rough), 이성현의 ‘시계 장치와 불꽃놀이’(Clockworks and Fireworks), 이규림의 ‘혼’(H’on), 김택수의 비올라 협주곡 ‘코-오’(Ko-oh), 이안환의 ‘봄은 다시 올거야’(Spring Will Come Again) 등이다. 이 외에도 진은숙의 2개 작품 ‘구갈론’(Gougalon)과 클리리넷 협주곡의 미 서부 초연이 이루어진다. 어떤 음악들인지, 모두 엄청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사람들은 주로 ‘스타연주자’들에게 열광하지만 ‘재연’이 목적인 연주자보다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 작곡가들에게 더 많은 주목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며 주연배우에게 열광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은 그 영화의 창조자인 작가와 감독이 더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현대음악, 특히 아방가르드 전위음악은 때로 난해하고 듣기 힘든 작품이 많다. 우리 귀에 익숙한 전통 조성과 화음을 따르지 않고, 음표들이 서로 대립하고 부딪치며 내는 생경한 음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또한 타악기를 많이 쓰는 것도 현대음악의 특징이어서 예를 들어 진은숙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이안환의 ‘봄은 다시 올거야’에는 무려 30여 종의 타악기들이 오케스트라에 포진하여 다양한 소리로 청중에게 도전하게 된다.
진은숙은 오래전 인터뷰에서 “현대음악만 어려운 게 아니라 모든 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 “음악이 추상예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과 공간의 좌표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의 추상예술에 대해 마음을 열고 호기심을 가지면 현대음악은 신기하고 매혹적인 요술주머니가 된다. 특히나 세계초연은 그 음악의 최초의 청중이 된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다.
그런데 이번 페스티벌에 현대음악만 있는 것은 아니다. 6일과 7, 8일 프로그램에는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1번(김선욱 협연)과 브람스의 더블 콘체르토가 들어있고, 10일 노부스 콰르텟의 실내악 연주회에서는 브람스, 쇤베르크, 드뷔시, 슈만의 음악들이 연주될 예정이다.
LA 필하모닉이 신경 써서 마련해준 클래식한류 축제다. 어느 때보다 우리들의 적극적인 참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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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