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 인형 30개 아닌 2개면 돼”
▶ 관세 여파 탓 가격 인상 감내 호소
▶ 인플레 현실화에 면피용 태세 전환
▶ “거액 버는 억만장자가 절약 요구”
▶ 공화당서도 공감 능력 결여 비난

주중 미국대사 임명식. 신임 주중국 미국대사로 임명된 데이비드 퍼듀(오른쪽) 전 상원의원이 7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대사 임명식에 참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 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감을 전하고 있다. [로이터]
“왜 인형이 30개나 필요하냐. 3개면 충분한데.”
관세 정당성을 납득시키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들고나온 메시지가 역풍을 맞고 있다. 위화감 때문이다. 자신은 ‘대통령과 식사할 기회’를 미끼로 내세워 가상화폐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면서, 평범한 미국인에겐 아이 장난감 살 돈조차 절약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감 능력이 결여된 ‘억만장자의 비유’라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형 이야기를 처음 꺼낸 것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백악관 각료회의에서다. 그는 “어쩌면 아이들이 인형을 30개 대신 2개를 갖게 되겠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인형 2개도 평소보다 몇 달러 더 비싸지겠다”고 말했다.
이달 4일 방영된 NBC뉴스 인터뷰에선 “나는 그냥 그들에게 인형이 30개나 필요하지는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3개면 된다”며 해당 발언의 의미를 해명했다. 또 “그들은 연필 250개가 필요하지 않다. 5개를 가지면 된다”고도 했다.
같은 날 사저가 있는 플로리다주(州) 팜비치에서 워싱턴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도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10세, 9세, 15세 소녀는 37개의 인형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2, 3, 4, 5개로도 아주 행복할 수 있다”며 같은 취지의 언급을 반복했다.
의도는 미국 내 제조업 붕괴와 일자리 소멸의 원인이 된 대(對)중국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당분간 중국산 저가 제품의 소비를 줄이는 동시에 관세 부과에 따른 가격 인상도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한다고 미국인들에게 호소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재집권 직후부터 밀어붙이고 있는 공격적 관세 정책의 핵심 표적이 중국임을 감안할 때 터무니없는 주문은 아니다.
그러나 실상은 면피용 ‘태세 전환’ 성격이 짙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정책을 도입할 때 강조한 핵심 단어는 ‘번영’이었다. 관세가 미국을 더 부유하게 만들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막상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 부작용이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자, 미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해 단기적으로 결핍을 견뎌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실제로 바비 인형 제조사인 마텔은 관세 영향으로 미국에서 일부 장난감 가격을 인상할 것이라고 6일 밝혔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의 수석 경제학자를 지낸 더글러스 홀츠-이킨은 6일 워싱턴포스트(WP)에 “불가피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상승 가능성 등 관세 여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 무신경한 수사(修辭)도 빈축을 샀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의 참모였던 마크 쇼트는 WP에 “가상화폐로 수십억 달러를 버는 대통령이 미국인들에게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과 학용품을 줄이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 CEA 위원장 출신인 재러드 번스타인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위해 생활 수준을 낮추라는 억만장자의 얘기가 대부분 미국인에게 어떻게 들릴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질타는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나왔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인형 발언의 역효과를 우려하고 있다고 7일 전했다. 케빈 크레이머(노스다코타) 의원은 “백만장자의 관점을 노동자 가족은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고 짚었다. 한 의원은 “결핍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의 언어”라고 했다. 랜드 폴(켄터키) 의원은 “인형을 몇 개나 가질지는 대통령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라며 ‘빅브라더(조지 오웰 소설 ‘1984’에 등장하는 시민 감시·통제 권력)’로 인식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