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봉희 사진작가
▶ ‘스튜디오 2000’ 40주년
▶ “사진은 직업 아닌 사명 고객들 대를 이어 찾아”
![[인터뷰] “가장 행복한 기억 기록하는 보람” [인터뷰] “가장 행복한 기억 기록하는 보람”](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25/04/30/20250430203217681.jpg)
LA 한인타운 중심에서 ‘스튜디오 2000’을 운영해 온 허봉희 사진작가
포토 스튜디오 간판을 내건 지 올해로 40년. LA 한인타운 중심에서 ‘스튜디오 2000’을 운영해 온 허봉희 사진작가는 요즘도 직접 카메라를 든다. 돌잔치, 졸업식, 결혼식, 가족사진, 증명사진까지. 손님의 삶의 순간을 함께 기록하며 그는 어느덧 타인의 인생을 수천 장의 사진으로 보듬어 온 기록자가 됐다.
허 작가가 사진과의 인연을 맺은 건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출장을 다녀온 작은오빠가 당시로서는 귀한 카메라를 선물로 건넸고, 호기심 많던 성격의 그는 곧 카메라에 빠져들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세상이 새롭게 구성되는 듯 한 감각, 프레임 안에 빛과 감정이 질서 있게 담기는 찰나의 기쁨은 어린 마음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로 다가왔다.
이후 사진은 취미를 넘어 생업이 됐다. 한국에서 사진 현상소를 운영하다 1981년 하와이로 건너와 일본 출신 사진작가와의 인연을 통해 사진 공부를 더 깊이 이어갔고, 1982년 남가주로 오며 본격적으로 상업 사진에 발을 디뎠다. 당시 오렌지카운티의 ‘고바우 사진관’ 전속 작가로 경력을 시작했고, 3년 후인 1985년 LA로 자리를 옮겨 자신의 이름을 건 ‘스튜디오 2000’을 열었다. 그는 “딱 15년만 하자는 생각으로 붙인 이름이었다”며 “이렇게 오래 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손님들과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어느덧 40년이 훌쩍 지났더라”며 웃어 보였다.
82년도에 처음 사진을 찍어준 손님의 손자 돌잔치까지 최근 찍었다는 그는, 대를 이어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유행도, 사람의 인연도 빠르게 들끓었다가 이내 식어버리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3대째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허 작가는 “특별한 비결은 없다”며 “그저 사진 한 장을 위해 바보처럼 진심을 다했던 걸 손님들이 알아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사진 한 장은 기억을 붙드는 실이 된다. 그렇기에 허 작가는 사진을 단순한 직업이 아닌 ‘사명’이라 여긴다. 허 작가는 “결혼식, 임신, 돌잔치, 졸업 등 손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함께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영광이다. 하지만 동시에 굉장한 부담이기도 하다.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0년 동안 사진을 찍으며 허 작가는 시대의 변화도 함께 겪어냈다. 사진 기술의 변화는 큰 도전이었다. 필름 카메라에 익숙했던 그에게 디지털로의 전환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허 작가는 “2000년대 초반, 기자일을 하던 후배가 찾아와 ‘이제 디지털로 가야 한다’며 재촉했다. 젊은 나이도 아니었기에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밤새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완전히 날라다닌다’”며 웃어보였다.
‘예쁘고 잘 나온 사진’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허 작가가 말하는 좋은 사진은 다르다. “피사체 본연의 아름다움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 한 장을 건지기 위해 100장이 넘게 찍는다”며 “찍고 나서도, 최대한 자연스럽고 빛나게 보이도록 다듬는다. 디지털 시대에서는 셔터만 누른다고 끝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포토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을 묻자 허 작가는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면 에너지가 솟아난다. 몸이 아무리 안 좋아도 신기하게 힘이 난다. 내 자신도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진은 이제 흔해졌지만, 그 가치는 여전히 살아 있다”며 “사진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기억으로 남는 한, 나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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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