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요 에세이] 스톤마운틴에 새겨진 영광

2025-04-30 (수) 12:00:00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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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담긴 영광과 그에 반비례하는 어두운 그림자의 높이와 넓이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넓은 초록빛 잔디 위에 우뚝 솟은 거대한 돌산 앞에서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하늘에서 돌덩이가 실수로 떨어졌다면 저런 모양일까.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도심에서 동쪽으로 평원 위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 화강암 산이 있다.

산의 한가운데, 말을 탄 세 인물이 타원형을 이루며 새겨져 있다. 그 크기는 9층 빌딩 높이에 축구장만 하다. 남북전쟁의 남부군 세 중심 인물들이다. 남부와 북부로 분열된 미국은 4년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그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전상자가 발생한 전쟁이었다. 남부연합의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 남부군을 이끌었던 로버트 리 장군, 그리고 리 장군의 심복이었던 스톤월 잭슨 장군이 그들이다.

가장 앞에 새겨진 제퍼슨 데이비스 남부연합 대통령은 전쟁 계획을 세우고 연방을 저지할 전략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외국의 승인을 얻지 못하고 전쟁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지폐를 찍어냈다. 역사가들은 그를 아브라함 링컨과 비교하며 전쟁 지도자로서 효율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리 장군은 뛰어난 전략가로, 그의 능력과 인품으로 남군을 이끌었다. 잭슨 장군은 “돌담처럼 버티고 있으니 여기서 싸우면 이길 것”이라는 전투에서의 용기를 주었기에 ‘돌담 잭슨’이라고 불렸다. 이 기념물은 1923년에 시작해 1970년에 완성되었으며, 완공 당시에는 리 장군의 어깨 위에 상을 차려 20명이 앉아 식사를 했다고 한다.

나는 잔디에 앉아 거대한 기마상을 바라보았다. 남북전쟁은 나에게 학생 시절 세계사 시간에서 배운 역사일 뿐, 이민자로서 그 의미가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끔 뉴스에서 이곳이 남부 연합의 유산과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논란이 된다는 이야기를 본다. 주위를 둘러보니 소풍 나온 가족들이 있었다. 풍선을 든 아이들, 간이 의자에 앉아 쉬는 노부부,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쁜 관광객들까지. 그들은 과연 스톤마운틴과 인종차별을 연결지어 생각할까? 나처럼 단순히 예술로 받아들인다면, 역사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잔디의 습기로 바지가 젖어 케이블카에 올랐다. 흔들리는 유리창 너머로 세 인물의 얼굴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패배의 그림자로 어두웠다. “누구나 전사는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패배는 예상하지 않았다.” 마가렛 미첼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쓴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말했다. 그들의 역사는 슬프게도 패배로 얼룩졌다. 스톤마운틴의 기마상은 그들의 열정을, 그리고 그들이 겪은 고통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산 정상은 의외로 평평했다. 사방을 둘러보면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었다. 멀리 애틀랜타의 마천루들이 솟아 있고, 집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바위 바닥에 군데군데 작은 물 웅덩이가 푸른 하늘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돌 틈에서 자라나 외롭게 서 있었다. 어떻게 돌 사이에서 자랄 수 있었을까? 물이 없는데 어떻게 자랄 수 있었을까,

역사는 바꿀 수 없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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