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앞둔 가운데 시장 친화적 정책을 펼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미국 자산 시장에서의 '성적표'는 부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세정책의 불확실성 속에 미국의 주가와 국채 가격, 달러 가치가 모두 약세를 보이는 '트리플 약세' 현상이 최근 나타났고 미국 실물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S&P 500, 이달 한때 취임 전 대비 16.9% 급락
28일(현지시간) 블룸버그·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 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지난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 주 대비 7.8% 하락한 상태다.
지난해 11월 미 대선 직후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 수혜 자산이 랠리를 펼치는 '트럼프 트레이드'가 연출됐고, 세계적 경기 둔화 우려에도 미국 자산은 강세를 보이는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2일 전 세계 교역국을 상대로 상호관세를 발표하는 등 무차별 관세 폭탄을 쏟아내면서 시장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지난 8일 종가 기준으로 보면 S&P 500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 대비 16.9% 급락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유화적인 태도와 무역 합의 기대감에 낙폭이 줄어들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4일 보고서를 통해 지난달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매도 규모가 600억 달러(약 86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 달러인덱스 9% 넘게 떨어져…미 국채 금리도 '불안'
취임 100일간 증시뿐만 아니라 달러 가치와 미 국채 가격도 동반 하락하는 등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매도하는 '셀 아메리카'가 펼쳐졌다.
주요 6개국 통화(유로화·엔화 등)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 주 대비 9% 넘게 떨어진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만 해도 주로 108 위에서 머물렀던 달러인덱스는 이달 들어 100 아래로 떨어졌고 99.2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최근 들어 진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시장금리의 벤치마크인 10년물 미 국채 금리는 이달 4일 3.85%를 찍은 뒤 11일 4.58%까지 치솟은 바 있다. 이후 4.22% 수준으로 내려간 상태다.
안전자산인 금값은 고공행진을 했으며 지난 22일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3,500.10달러를 찍었다. 금값은 최근 일부 조정을 받고 3,313달러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 취임 후 첫 GDP 성장률 주목…"3년만에 최저" 전망도
실물 경제에도 조만간 관세 여파가 닥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 상무부는 오는 30일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속보치)을 발표할 예정이다.
블룸버그는 관세 여파 등으로 인해 1분기 미국 GDP가 0.4%(전분기 대비 연율) 증가에 그쳤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는 지난해 4분기(+2.4%)와 비교해 급감한 것이며 2022년 2분기(+0.3%) 이후 약 3년 만에 최저에 해당한다.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블룸버그의 월례 설문조사를 보면 미국 경제가 향후 12개월 안에 침체할 확률에 대한 전망(중간값)은 지난달 30%에서 이번 달 45%로 올라갔다.
월마트·타깃 등 미국 대형 소매업체 대표들은 지난 21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관세로 매장이 텅텅 빌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 "투자자들, 미국이라는 브랜드 재평가 중"
헤지펀드 업계 거물인 켄 그리핀 시타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미국은 하나의 국가 이상이며 보편적 브랜드"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으로 인해 이 브랜드가 약해지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과 달리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꿈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100일 만에 투자자들이 미국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다면서, 무역정책으로 미국 시장에 항구적인 타격이 있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다만 미국의 시장 규모와 경제 저력 등을 감안할 때 미국 자산 매도가 일시적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29조 달러(약 4경1천조원)에 가까운 미 국채 시장을 대체할 자산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자산운용사 찰스슈와브의 리즈 앤 손더스는 현 상황에 대해 "미국 시장과 경제 체제에 불가역적인 타격을 가했는지는 실존적 질문"이라면서도 "아직 장기적 답은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