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드디어 적수를 만났다. 388년 전통의 명문 하버드가 트럼프와 일대 자존심을 건 싸움에 나섰다. 링 위에 선 그들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미국에는 트럼프의 공격에 맥없이 쓰러진 라이벌들이 너무 많았다. 대표적인 그룹이 공화당 온건파들. 2016년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갔을 때만 해도 그의 행보를 진지하게 바라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튀기 좋아하는 그가 리얼리티 쇼 정도로 생각하고 나왔나보다 생각했다. 모두가 방심하며 어물어물 하는 사이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었고, 마침내는 막강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후보까지 꺾었다.
그렇게 그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면서 많은 명망 있는 공화당 정치인들은 정계를 떠나거나 트럼프 아부꾼들로 바뀌었다. 백기를 든 것이다. 그의 2기 집권 100일 동안에도 들리는 건 무너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민자들, 성적 소수자들, 연방공무원들, 연방기금 지원받는 기관들, 유학생들 등. 트럼프가 칼을 뺏다 하면 모두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런데 그 막강한 트럼프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항거하는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하버드가 트럼프 행정부의 ‘대학 길들이기’ 요구들이 위법이라며 법정소송에 나섰다. 발단은 근년 대학 캠퍼스를 휩쓴 반전시위.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에 반대하며 팔레스타인에 동정적인 시위들이 줄을 이었는데, 그것이 진보진영의 시각이란 점이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렸다.
트럼프는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를 척결하라며 ‘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을 없애라고 대학들에 명령했다. 특정 이념성향의 교직원을 임용하거나 외국학생을 입학시키지 말며, 이와 관련 연방정부의 감독을 받으라는 등의 내용이다. 트럼프가 손에 쥔 것은 연방기금. 불복하면 지원금을 끊겠다는 협박에 컬럼비아는 굴복했다.
하버드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부의 월권행위에 정면 대항하기로 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 그리고 연방기금을 지원받는 프로그램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한 1964년 민권법을 트럼프 행정부가 어겼다는 것이다.
하버드는 저항의 대가를 이미 아프게 치르고 있다. 연구비로 지원받던 근 23억 달러의 연방기금이 동결되었고, 그에 더해 연방정부 보조금 90억 달러 전액 동결, 면세혜택 지위 박탈 등의 협박을 받고 있다. 아무리 부자 대학이라도 비틀거릴 수밖에 없는 강펀치이다. 하지만 그래도 트럼프와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고 나선 것은 하버드라서 가능한 일이다.
하버드는 자산이 530억 달러로 세계 최고 부자 대학이다. 미국이 건국되기 140년 전에 세워진 유구한 전통, 천문학적 재력, 막강한 동문인맥을 자랑하는 하버드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트럼프가 미국에서 가장 힘 센 상대와 링 위에 오른 셈이다.
이번 전면전을 위해 하버드는 억만장자 동문들의 지원을 부탁하는 한편 연방의회 공화당 정치인들을 상대로 강한 로비를 계획 중이다. 아울러 혁신적 연구를 통해 하버드가 미국인들의 삶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싸움의 승패를 가르는 기본은 민심. 하버드 등 명문사립들의 이미지가 좋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너무 비싼 학비. 등록금과 생활비를 합친 하버드의 학비는 거의 9만 달러에 달한다. 집이 아주 부자이거나 아주 가난해서 학비를 면제 받는 학생들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인구의 대다수인 중산층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이 부분을 파고든다. 하버드를 ‘웃기는 데’라고 막말을 한다. 테러리즘이나 옹호하는 좌파 엘리트들의 온상이라는 것이다.
하버드와 트럼프의 점입가경 기 싸움에서 누가 마지막에 웃을 것인가. 싸움의 결과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