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모하비 사막 한 벌판, 그곳에 낭만의 카페가 있었다. 1987년 독일의 한 영화제작자가 만들고 시아틀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까지 받은 영화의 촬영지다. 주제음악 ‘I’m calling you!’는 아카데미 주제가 상 후보에 까지 올랐던 꽤 유명한 영화의 촬영지가 지금도 거기 있다.
‘바그다드 카페’라는 이 영화는 미국여행을 온 독일부부의 싸움, 그것도 사막 한복판에서의 싸음으로 시작된다. 분이 안 풀린 남자는 여자의 큰 트렁크와 노란 보온병을 펄펄 끓는 사막 허허 벌판에 팽개치고 떠나가 버린다. 그리고 절규하듯 ‘I am calling you!’가 뒤따른다.
영화는, 하루하루의 삶이 지칠대로 지쳐 더 이상 출구가 없는 막막한 카페 주인 흑인 브렌다와 졸지에 외국에서 혼자가 된 야스민이 만나고 부딪끼면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며 없어서는 안되는 친구가 된다. 뚱뚱한 체격이지만 조용하면서도 착하고 따듯한 야스민의 매력에 푹 빠진 화가 콕스의 붓은 신 들린듯 야스민을 모델로 캔버스 위에서 춤을 춘다.
야스민과 브렌다가 부르는 노래와 춤, 그리고 매직쇼로 트럭커들 사이에선 라스베가스 쇼 보다 더 재미난 곳이라고 소문이 나고 카페는 왁자지껄 문전 성시를 이룬다. 그러던 어느 날 야스민은 영주권 없이 일을 한다며 추방을 당하게 된다. 모든 것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 어둡고 희망 없는 일상에서 브렌다는 얼마나 야스민을 그리워 하는지... 영주권과 신분문제 이야기는 남의 얘기가 아닌 바로 우리 이민자들의 이야기여서 더 실감나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유튜브나 구글맵에 바그다드 카페라고 치면 라스베가스 가는 도중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카페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간판도 낡았지만 그때 그대로다. 주유소와 모텔 건물은 사라졌고 식당 자리만 지금의 기프트 샵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화가 역의 잭 팔란스가 살았던 화실 겸 침실인 이동용 트레일러가 뒷마당에 그대로 있어 그나마 촬영 현장을 본 듯 가슴이 살짝 설렌다. 후리스피를 던지며 뛰놀던 허허 벌판의 높은 물탱크엔 지금도 BAGDAD CAFE 라는 녹쓴 글씨가 벗겨진 페인트 위로 세월의 흔적을 뱉어내고 있다.
영화 속 노랑 보온 물병은 트레이드 마크처럼 카운터 한쪽 코너에서 우리를 반긴다. 커피도 음식도 아무 것도 없다. Route 66에 상호가 박힌T셔츠나 머그컵을 살수 있다. 영화 속에서 중요한 피아노가 있는 넓은 방 천장엔 수많은 나라의 깃발들을 펼쳐 붙여놓았는데 반갑게도 거기에 우리 태극기가 눈에 띄게 좋은 자리에서 방문객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유럽 관광객이 많다며 두꺼운 방명록 여러 개를 보여준다. 한글로 다녀간 흔적을 남겨둔다.
좇겨났던 야스민이 돌아와 매직쇼로 다시 활기를 찾게 된 어느날 밤, 화가 콕스가 찾아온다. 추방 당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자기 같은 미국시민권자와 결혼을 하면 된다며 진지하게“나랑 결혼해 주겠오?” 그리고 야스민이 “예스!” 하며 둘이 손을 잡고 영화는 끝난다. 우리 주변에서 늘 겪는 일들을 영화의 주인공도 겪고 있다는 데 친근감이 느껴졌다.
40년 전에 만들어진 오래된 영화 속의 이야기들. 그 추억들을 간직하고 지금도 사막의 열기 속에 뜨거운 모래바람을 맞고 서 있는 바그다드 카페. 태극기까지 천장에 붙이고 있는 허름하지만 정감이 가는 그 건물이 비록 짧지만 사막 속의 역사로 잘 보존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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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김 서예가ㆍ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