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강경 이민 정책
▶ 잇단 영주권자 추방에 공항 재입국 때 곤욕도
▶ “그린카드도 불안” 확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 이민 정책이 조성한 이민사회 내 불안감이 합법적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영주권자에게까지 확산되면서 최근 외국 여행을 취소하는 합법 이민자들이 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해외 방문을 마치고 미국에 재입국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컬럼비아대의 친 팔레스타인 시위와 관련해 영주권을 가진 학생 2명에 대한 추방을 시도해 논란이 됐다. 또한 한 독일 출신 영주권자는 미국에 재입국하는 과정에서 영주권 포기 서류에 서명하도록 강요받은 뒤 구금됐다. 그는 팔레스타인 시위와는 무관하지만, 음주운전 유죄판결 기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 체류 외국인뿐 아니라 영주권자까지 추방의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외국에서 휴가나 신혼여행 등을 계획했던 영주권자들이 최근 일정을 취소하거나 미루는 사례도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LA의 이민 변호사 조슈아 골드스타인은 “영주권자들이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라며 “심지어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까지 ‘난 여행해도 되느냐’는 질문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1,280만 명에 달하는 영주권자는 투표만 할 수 없을 뿐 사실상 시민권자와 동일한 권리를 행사해왔다. 이 때문에 영주권을 뜻하는 ‘그린카드’는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영주권자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달라지는 양상이다. JD 밴스 부통령은 최근 컬럼비아대 영주권자 학생의 체포와 관련해 “영주권자라도 미국에 무기한으로 있을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연방 이민당국이 특정 인물에 대해 ‘미국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판단하고, 그 인물이 시민권자가 아니라면 추방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영주권자들이 LA 국제공항 등 입국 과정에서 입국심사관이 미국 영주 목적이 의심된다며 영주권 포기 서류(I-407)에 서명하라고 압박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전종준 이민변호사는 “많은 경우 I-407 양식이 무슨 서류인지 몰라서 서명하기를 꺼리기도 하지만, 공항 입국심사관 말대로 내용도 모른 채 서명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러나 미국 공항에서 영주권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절대로 I-407 양식에 서명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는 영주권 발급 절차의 속도도 늦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엄격한 보안 심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난민 등의 영주권 신청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는 것이다. 싱크탱크 카토연구소의 이민정책 담당자 데이빗 비어는 “트럼프 행정부는 시민권자가 아니라면 모두 동일한 취급을 하겠다는 방침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며 “정부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체포하고 추방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연방 법원은 박해나 고문의 가능성이 있는데도 이의제기 등 구제절차를 주지 않고 이민자를 다른 나라로 추방하는 행위를 잠정 중단하라고 이민당국에 명령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매사추세츠 연방법원의 브라이언 머피 판사는 지난달 28일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신속 추방 정책을 중단시켜 달라며 이민자 권리 옹호 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이처럼 결정했다.
머피 판사는 이날 재판에서 고문 방지협약에 따라 이민자들은 고문받을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추방되지 않도록 보호받는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민자들에게 서면 통지와 함께 박해·고문 공포에 기반한 주장을 제출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며, 이 같은 기회 없이 미국에서 다른 나라로 추방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머피 판사는 이날 법정에서 정부 측 변호인을 향해 “이민법원이 안된다고 말한 국가만 아니라면 나머지 어떤 나라로도 아무런 통지도 없이 이민자들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면, 이는 듣기에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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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