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젤렌스키에 “미 소유가 최선”
▶ 러 점령 자포리자 원전 노려
▶ 우크라 채굴 ‘에너지원’ 의도
▶ 젤렌스키 “원전은 우크라 것”

우크라 귀환 포로 ‘벅찬 재회’ 우크라-러시아 종전 협상이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지난 19일 양국 간 포로 협상 결과로 석방된 한 우크라이나군 포로가 친지와 함께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로이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종전을 중재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큰 원자력발전소를 자국에 넘기라고 우크라이나에 제안했다. 미국이 소유한 시설이라면 러시아라도 공격할 엄두를 못 낼 것이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 논리다. 전후 우크라이나 광물 확보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을 의논한 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공동 성명으로 주요 논의 내용을 소개했다. 성명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전력 공급망과 원전도 이날 의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전력 및 유틸리티 전문성을 활용해 우크라이나가 원전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말했다.
루비오 장관과 왈츠 보좌관은 “미국이 원전을 소유하는 게 해당 원전 보호 및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 지원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소유권을 넘기라는 뜻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와의 광물 협정 때 미국이 내세운 논리와 흡사하다. 투자를 받아 경제적 이해관계로 미국을 엮으면 저절로 안전 보장이 된다는 게 미국 측 주장이었고, 그 저변에는 감히 누가 미국을 건드리겠느냐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검토 대상은 2022년 침공 직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 원전이다. 미국이 자포리자 원전을 탐내는 것은 광물 협정 체결의 전제 조건이라서다. 광물을 채굴·가공하려면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한데 우크라이나는 물론 유럽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자포리자 원전이 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반응은 달랐다. 20일 CNN에 따르면 그는 이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자포리자 원전 소유권 이양’ 논의에 선을 그었다. “모든 원자력발전소는 우크라이나인의 것”고 말해 종전 뒤 현재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소유권을 미국에 넘기라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측 압박을 일축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미국 측과 (원전) 소유권을 논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백악관이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날 전화통화에서 미국의 자포리자 원전 운영 관련 대화가 오간 사실을 알리면서 “미국의 (우크라이나) 원전 소유는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를 지원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밝힌 데 따른 반응이었다. 미국이 자포리자 원전 운영에 도움을 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소유권 자체를 이전하는 건 반대한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중립국 유지’ 요구도 일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단 한 번도 중립국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됐다고 말한 적이 없다”면서 “(중립국 요구는) 종전 제안이 아닌 최후 통첩”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에도 동일한 요구를 했던 점에 비춰보면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자국 영향권 아래 놓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중립국 요구는 우크라이나에 어떤 블록에도 가입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30일간 전쟁 당사자인 두 나라가 에너지·인프라 공습을 중단하는 ‘부분 휴전’ 방안에 합의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의 동의도 이끌어 냈다. 이에 따라 양측 팀이 며칠 내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나 휴전 범위를 에너지에서 흑해 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루비오 장관과 왈츠 보좌관이 전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일단 휴전 대상 범위에 이견이 있다. 상대적으로 우세한 러시아는 에너지 인프라에 국한하려 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철도와 항만 등 인프라 전반이 포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가 점령 중인 러시아 쿠르스크의 전황은 휴전 확대의 걸림돌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견에서 “푸틴은 우리 군대가 쿠르스크에 있는 한 (전면) 휴전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