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무역적자국 다수 해당 추정…정부 4월 ‘관세 충격 최소화’ 주력
▶ 미, 무관세 한국에 소고기·IT규제 등 비관세장벽 명분 압박
▶ 안덕근 산업장관 다시 방미… “미국서 계속 점수 쌓아둬야”

미국 축산업계가 30개월 이상된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한국의 검역 규정을 개선이 필요한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지목하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한국의 소고기 월령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한 가운데 12일(한국시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미국산 소고기가 진열돼 있다. [연합]
트럼프 신정부 고위 당국자인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이 '지저분한 15'(Dirty 15)라는 개념을 돌연 꺼내며 이들 국가가 앞으로 미국의 집중적 압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신정부의 눈 밖에 난 15개의 '불량 무역 국가' 명단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정부는 미국의 주요 무역 적자국인 우리나라도 포함됐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베선트 장관은 18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이 오는 4월 2일 전후로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상호관세 문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더티 15'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그는 구체적인 나라는 거명하지 않은 채 '더티 15' 국가들이 자국에 상당한 관세를 부과하고, 중요한 비관세 장벽을 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모두 포함한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고려해 각국에 달리 상호관세율을 적용하겠다고 말해 '더티 15'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적용받게 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경제에 끼칠 충격 우려에도 2주 뒤인 4월 2일 상호관세 도입을 강행할 태세다.
이에 '완전 면제'보다는 '충격파 최소화'를 당면 목표로 삼은 정부는 미국의 입장에서 주요 무역 적자국인 한국이 '더티 15'에 포함됐을 가능성을 주시하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상대 국가가 더 높은 관세율을 매기는 것을 놓고 상호관세 도입 문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 정부가 한국 등 주요국의 비관세 장벽 문제를 제기하는 데 주력하는 분위기가 감지돼 상호관세 부과 강행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더티 15 등) 네이밍이 어떻게 됐든 간에 전반적 맥락은 무역 적자국들을 손봐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며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가 없고, EU·일본 등 선진국도 미국과 전반적 관세가 낮아서 관세율만으로는 문제로 삼기 어렵다"고 말했다.
작년 기준 미국의 주요 무역수지 적자국은 중국, EU,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일본, 한국, 태국 등의 순이다. 한국은 9위다.
따라서 미국이 '불공정 무역 관계'를 고쳐놓겠다고 벼르는 '더티 15'에 이들 국가가 대부분 포함됐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인식이다.
그간 중국을 제외한 한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은 트럼프 신정부의 우선 무역 압박 대상에서 상대적으로 뒤로 밀린 측면도 있었다.
한국은 미국이 중국과 전략 경쟁 와중에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조선업의 최우선 협력 파트너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과제'인 알래스카 가스 개발의 잠재 파트너·고객이라는 점 등에서 미국이 우호적으로 접근할 요인이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근 케빈 해셋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한국을 유럽, 중국과 더불어 주요 무역 적자국으로 거명하면서 비관세 장벽 철폐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우리나라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라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위기감도 커지는 분위기다.
미국산에 더 높은 관세를 매겨온 유럽연합(EU)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한미 FTA로 상호 대부분 상품에 무관세를 적용해 향후 비관세 장벽 문제를 명분 삼은 미국의 거센 압력이 예상된다.
국내에서 매우 민감한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 제한 문제부터 해묵은 논란인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 문제, 한국의 약값 책정 정책, 스크린 쿼터제 등에 이르는 다양한 비관세 장벽 문제가 미국 측의 대한국 무역 압박의 대상이 될 것으로 거론되는 이슈들이다.
실제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 14일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면담에서 무역수지 불균형 문제를 제기하고 미국 농산물 대상 한국의 위생·검역(SPS), 한국의 디지털 통상 장벽 등 비관세 장벽 해소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내달 한국도 다른 세계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다층적 고위·실무 협상으로 적용되는 관세율을 낮추는 등 충격파를 최소화하는 데 대응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미국이 4월 2일 각국 맞춤형 상호관세와 더불어 자동차·반도체 등 트럼프 대통령이 따로 언급한 품목에 별도의 관세를 매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한다.
가령 한국에 10%의 상호관세가 매겨지고, 전 세계 자동차에 똑같이 15% 관세가 붙게 된다면 한국산 자동차 관세가 현재의 0%에서 25%로 높아지게 돼 미국산 자동차와 가격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각국에 매기는 상호관세율에 차이가 예고된 가운데 한국으로서는 가급적 다른 국가보다 낮은 상호관세율을 부과받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되, 여의찮을 땐 상대적으로 더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는 것을 피하는 것을 차선책으로 해 교섭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안덕근 산업부 장관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등 고위 당국자들의 연쇄 방미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4배 관세율' 등 미국 측의 오해를 풀고, 조선·가스 등 한국의 몸값을 높일 수 있는 협력 요인을 지렛대 삼아 대한국 압력 수위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 중이다.
지난달 방미해 트럼프 신정부 통상·에너지 고위 당국자들과 첫 연쇄 접촉을 했던 안 장관은 이번주 다시 미국을 다시 찾아가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 등을 만나 협의에 나선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미국 측에서는 상호관세를 강행할 분위기가 강해, 일단 (관세 부과를) 해놓고 나서 개별적으로 예외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예상한다"며 "우리로서는 계속 크레딧(점수)을 쌓고 나중에 협력 요인 극대화를 통해 나중에 빠질 수 있는 에셋(자산)을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