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에서 애틀랜타까지의 거리는 765 마일 (1,224km), 리 수로는 꼭 삼천리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천리, 부산에서 신의주까지는 천 7백리인데도 한반도를 굳이 ‘무궁화 삼천리’ 로 부르는 것은 함경북도 최북단 온성에서 제주도 남쪽 마라도 까지를 쳤을 때 삼천리가 되기 때문이다.
박목월 선생의 ‘나그네’ 란 시가 있다. 그 시에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란 구절이 나오는데 지난 달 나는 삼백리의 열배가 되는 삼천리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다녀왔다. 박목월 선생은 결혼식 주례를 해주시면서 가깝게 모셨던 분이기는 하지만 감히 그 분의 ‘나그네’ 길을 연상하며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언제나 자녀들이 사는 곳은 ‘술 익는 마을’ 못지않게 정감이 넘치기 마련이다. 그런데다 LA에서 올림픽가 가 그랬던 것처럼 한글 간판이 선명한 둘루스 한인 타운에 들어서면 마음이 더욱 푸근 해 진다. 아들과 딸이 고맙게도 한번은 뉴저지에서, 한번은 애틀랜타에서 돌아가며 만나기로 해 두 번째로 ‘남도 삼천리’를 찾았다. ‘길은 외줄기’-- 다른 길도 있으나 이번에도 비행기 편이다.
올겨울 동부지역은 눈이 자주 오고 추위도 오래가는 편이었다. 그에 비해 위도 상으로 8도가량 남쪽에 위치한 애틀랜타 는 눈은 딱 한번 왔고 기온은 평균 20도 가량 높았다. ‘강나루’ 보다 머나 먼 네 개 주의 하늘을 지나 ‘밀밭 길’이 아닌 ‘목화 길’과 ‘복숭아 밭’으로 유명했던 조지아 주, 지금쯤 체로키카운티 깁스 가든에 만발했을 수백만 송이의 황금빛 수선화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 박목월 선생의 고향 경주를 떠올릴 만큼 아름다운 자연과 공원이 많은 평화로운 땅, 대형 기업체와 유입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발전도상에 있는 도시. 그러나 차마 잊지 못할 아픈 과거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1861년에서 1865년까지 벌어졌던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애틀랜타는 도시 전체가 불타고 65만 명이 전사한 처참한 피해지 였다. 군사적 열세로 북부에 크게 패한 남부 지역은 그 뒤 연방 정부의 포용정책으로 재건은 되었으나 16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분노와 적개심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
비비안 리가 주연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기억하며 ‘애틀랜타 히스토리센터’를 찾았다. 곳곳에 ‘잊지 말자’는 격문과 함께 전쟁의 흔적들이 잘 보관되어 있었는데 전투 상항을 재현해 놓은 사이클로라마 원형극장이 일품이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노예제도가 잘못된 제도였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잃어버린 대의(Lost Cause)’ 라는 이론을 내세우는 남부의 역사학자들은 남북 전쟁은 백인 우월주의와 남부의 노예제가 충돌한 전쟁이었으며 남부의 조상들이 무조건 부도덕한 가치에 매달렸던 죄인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내전의 상처는 치유가 쉽지 않다. 새 정부를 출범시킨 트럼프 대통령은 어서 미국의 정신인 ‘다양성과 평등, 포용’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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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평화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