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퇴직을 하다

2025-01-13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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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 대부분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했다. 일하며 만났던 많은 환자들의 사연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었다. 복도의 끝, 이중 유리문을 들어서면 <제한 구역> 표시가 있고, 방문객을 콘트롤 하는 안내데스크가 있다. 입구엔 늘 긴장감, 고통, 숨소리조차 힘든 무거움이 가득하다. 그 사이로 아주 작은 희망 만이 햇빛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흔들리며 떠 있다.

바 코드를 대면 ‘찌익’하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리고 나는 그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환자의 상태가 알록달록 숫자와 선으로 표시되는 모니터 앞에 서면 하루의 바쁜 걸음이 시작된다. 크리스마스 추리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는 약병들과 약물 이름과 주입 속도를 알 수 있는 기계들 앞에서 꼼꼼히 체크한다.

내게 주어진 12시간 동안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면 고마운 일이고 퇴근하는 발걸음도 가볍다. 그러나 세상사는 일이 계획한 대로만 되던가.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거나, 수술실로 돌려보내야 하거나, 최악의 경우 죽음에 이르면, 일은 말 그대로 천근만근의 무게로 나를 누른다. 넋이 나갈때도 있다. 중환자실 의료진의 의무는 어떻게 해서라도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그런 날은 물 한모금도 마실 수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파김치가 되어 다음 근무 교대자에게 인계를 줄 때야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볼 수 있다. 어둑한 시간에 출근했는데 밖은 또 어두워졌다. 퇴근 차에 시동을 걸고 후진을 하면서야 핸들이 뻑뻑하게 느껴지도록 어깨가 아프고 페달이 안 밟히도록 발이 부었다는 걸 안다.


집에 도착하여 차고 문을 올리며, 하루의 시간은 밖에 부려 두고 안으로 들어간다. 안 그런 척, 별일 없는 척해도 하루의 고됨이 고스란히 몸에 배어 있고, 이를 아는 남편과 아들. ‘씻고 쉴께’, 한마디가 가족에게 보내는 유일한 말이었던 시간.

세월이 많이 지났던 어느날, 툭 던지는 말로 ‘아~ 이제 일 그만 하고 싶다.’라고 했는데 남편의 답은, ‘오늘 그만 둬.’였다. 아직 65세가 안되었고, 난 70세까지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남편의 답이 용기가 되었을까, 그날 사표를 썼고, 5년 전의 일이다. 40 여년의 간호사 생활의 마감인 퇴직!

이후,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이중문을 열고 들어 가지 않아도 되고, 사연들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 이 평온한 아침. 커피 한잔을 내 방에서 느긋하게 마시며, 인터넷으로 한국 신문을 보고, 건강한 식단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계절에 맞는 음악을 틀어 놓고 여유 있게 창 밖을 내다본다. 버거웠지만 버겁다고 말하지 못했고, 힘들었지만 힘든 내색을 못했다. 과부하가 걸려 어렵게 끌려 가는 것 보다는, 그만둘까? 생각이 든 그 시간에 바로 실행했다. 나의 시간은 그것으로 충분했다며.

뒤돌아 보면 힘든 시간 잘 견디었고, 참 열심히 일했다. 그런 나에게 스스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며 오늘 아침도 힘차게 헬스장으로 향한다. 오후에는 장을 보고,집안을 청소하며, 음식을 준비한다. 소소한 행복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젊은 시절의 지근한 견딤이 결과물로 다가와 다정하게 내 손을 잡아준다. 아침 햇살이 길게 거실로 들어오며 따뜻하고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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