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존 위기 혼다·닛산 합병 협상…‘세계 3위 공룡’ 초읽기

2024-12-19 (목) 12:00:00 서울경제=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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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완성차 ‘합종연횡’ 모색

▶ 성사땐 연판매 800만대 기업
▶ 현대차 제치고 업계 3위 등극
▶ 비야디·테슬라 전기차 공세에
▶ 수익성 악화 속 타개책 찾아

최근 실적 부진에 빠진 일본 자동차 업체 혼다와 닛산이 합병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지각 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세계 7위와 8위인 두 회사의 합병이 최종 성사되면 현대자동차그룹을 밀어내고 글로벌 3위 완성차 업체로 거듭나게 된다. 미국 테슬라뿐만 아니라 비야디(BYD) 등 중국 전기차 업체들에도 추월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합병이 전격 추진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현대자동차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공동 개발·생산까지 염두에 둔 새로운 동맹을 결성하는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 간 합종연횡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18일(현지 시각)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혼다와 닛산이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양 사가 그 산하에 들어가는 형태로 조정되는 방식을 논의 중이다. 닛산이 최대주주로 있는 미쓰비시자동차까지 합류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 사는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조만간 양해각서를 체결할 계획이다.

일본 내 2~4위인 세 회사의 연간 판매 대수를 모두 합하면 813만 대(지난해 기준)에 이른다. 이는 전 세계 1위 도요타자동차(1123만 대)와 2위 폭스바겐(923만 대)에 이어 3위 규모로, 합병이 성사되면 지난해 730만 대를 판매한 현대자동차그룹은 4위로 밀려나게 된다.


이 같은 보도에 혼다와 닛산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지만 닛케이는 3월부터 양 사가 물밑에서 논의를 해왔고 8월 자동차 부품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전략적 제휴를 약속하며 합병을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전했다. 특히 이들 업체가 전격적으로 합병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갈수록 거세지는 전기차 업체들의 공세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2기에서 현실화할 관세정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자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닛케이는 “일본 업체 강세 지역이었던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올해 1~11월 혼다와 닛산의 중국 시장 누적 판매 대수는 각각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0.7%, 10.5% 감소하며 고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테슬라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히고 있는 데다 내년 저가 전기차를 내놓는 것도 일본 업체들에는 위협 요인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급부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2기에서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활동하는 등 테슬라의 영향력이 확대되면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받을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전기차 업체의 공세가 거세지며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차량 중심의 일본차 업체들은 판매 대수가 급감하며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특히 닛산은 지난해 르노와의 불평등한 자본 관계를 정리한 것이 오히려 비용 증가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앞서 르노는 1999년 경영 위기를 겪는 닛산 지분을 사들이며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사실상 닛산 경영을 주도했다. 르노가 닛산 지분 43.4%, 닛산이 르노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닛산이 불평등한 자본 관계를 재검토해달라고 요구함에 따라 지난해 7월 자본 관계를 대등하게 재조정했다. 닛산은 르노와 함께 낮은 비용으로 조달했던 부품을 단독으로 조달해야 했고 그간 누렸던 규모의 경제 효과는 사라졌다. 이는 곧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닛산은 2024년 4~9월 결산에서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0.2%나 곤두박질한 329억 8000만 엔(약 3087억 원)을 기록했다. 전 세계 직원 중 9000명을 해고하고 생산능력을 20%나 감축하는 등 존폐 기로에 서자 혼다와의 합병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급변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과의 동침’이 대세가 됐다. 트럼프가 공언한 관세정책에 취약한 것으로 여겨지는 독일 완성차 업계는 더욱 절박한 모습이다. 9월 BMW는 도요타자동차와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협력을 선언했고 폭스바겐은 미 전기트럭 스타트업 리비안과 합작사를 설립하고 전기차를 양산하기로 했다.

<서울경제=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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