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파원 리포트] 비상계엄이 불러온 K경제의 위기

2024-12-09 (월) 12:00:00 박홍용 서울경제 LA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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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간으로 3일 아침 한국 지인들이 카카오톡 단톡방에 올린 ‘계엄령’ 소식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는 헌법 77조에 따라 2시간 만에 해제됐다. 이역만리 땅에서 계엄령 사태를 바라보면서 가뜩이나 먹구름이 잔뜩 낀 대한민국 경제에 미칠 파급력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과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최고통수권자, 즉 커멘더 인 치프(Commander in Chief)가 직접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사실이 가져올 파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은 가장 빠른 속도로 반응했다. 외국인들은 벌써 돈을 빼고 있다.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은 1조2,435억원 어치의 주식을 순매도 했고, 1,478억원의 한국 국채를 팔아치웠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밤 당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442원까지 치솟았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현으로 강달러가 예상되며 2년 만에 1,400원대를 뚫고 올라갔던 환율이 천장을 뚫고 1,440원대까지 치솟은 것이다. 비상계엄이 국회에 의해 해제된 후 환율은 다소 안정을 되찾았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만큼환율 밴드는 앞으로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금융기관은 계엄령 이후 탄핵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정치적인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경제 펀더멘털 약화로 환율이 상승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국 등 주요 동맹과 외신 등도 이번 사태를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커트 캠벨 국무부 장관은 “윤 대통령이 크게 오판했다고 생각한다”며 “계엄령에 대한 과거 경험의 기억이 한국에서 깊고 부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 4일부터 이틀간 워싱턴DC에서


진행하려던 한·미 제4차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제1차 NCG 도상연습(TTX)을 연기했고,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방한을 취소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윤 대통령이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며 민주주의를 중시해온 바이든 행정부와 한국의 관계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평가했고,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한국의 계엄령 발동과 탄핵 부결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동맹국과의 관계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빅터 차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을 통해 “윤 대통령의 행동은 중국과 북한, 러시아의 위협이 고조되는 가장 부적절한 시점에서 한국에 장기적인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국민들의 걱정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번 계엄령과 탄핵 등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한국 경제와 미국 내 한인 동포 경제가 위축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IB 씨티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1.8%에서 1.6%으로 하향했다. 씨티는 “올해 4분기 성장률 둔화와 내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인상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국은행도 내년 성장률을 기존 2.1%에서 1.9%로 낮췄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내년 성장률 전망을 종전 2.1%에서 2.0%로 하향했다. 이들의 성장률 전망은 모두 계엄령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발표된 것이다. 계엄령 사태가 가져올 후폭풍은 현재로는 종료 시기와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국의 대한 높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대외 무역을 추진하거나 미국 본토에서 연계 사업을 추진하려 했던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정치 그 자체가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는 지금, 개개인이 신발 끈을 동여매는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상당 기간 안전벨트를 꽉 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홍용 서울경제 LA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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