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디자인 하우스 주최로 북촌 일대 한옥 오픈 하우스 형식으로 전시된 ‘행복작당-가가호호(家家好好)’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한옥 내부 구경을 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북촌의 대표적인 한옥 10여 곳의 굳게 닫혔던 문이 이날 하루 활짝 열려 한국전통 건축양식인 한옥이 얼마나 기능적인지와 현대적 요소와 결합되어 새로운 주거공간으로 활용되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한옥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기와지붕의 곡선이다. 이는 하늘과 땅의 연결이라 할 수 있다. 흙으로 지어진 벽, 전통양식 창과 문, 특히 전통적 한옥은 ‘ㄷ’ 자 형태로 지어져 마당이 있다. 바람 불고 눈비가 들이치고 낮에는 새파란 하늘과 구름, 밤이면 운이 좋은 날에 별빛까지 마음껏 들여다 놓을 수 있는 공간인 마당은 오롯이 자기만의 공간으로 바깥세상을 잊을 수 있다.
단순한 구조에 둥근 나무 기둥이 주는 편안함, 바람과 햇살이 들어와 소통하는 창호지문이나 마당이 있는 한옥은 나무, 돌, 흙으로 지어져 자연을 집안으로 들여놓았다 할 수 있다.
이날, 장단기 레지던스로 활용되는 한옥은 천장의 서까래 나무와 듬직한 대들보 아래 침대와 입식 가구, 전통양식 창호지 문을 통해 은은한 햇살이 들어와 안온하고 쾌적했다.
요즘의 한옥은 단열재와 현대식 인테리어로 아파트 같은 실내로 따뜻하기만 하다.
이날, 오래된 한옥에 들어갔다가 와송을 보고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진짜 기와 틈에서만 자란다는 와송(瓦松), 소나무잎이나 소나무꽃이 닮았다고 하는 그 와송이 있었다.
고궁이나 사찰, 기와지붕 위에 자생하는 다년생 풀인 와송의 잎은 살이 두툼하고 겉은 바늘처럼 생겼으나 항암효과뿐 아니라 해열, 지열, 간염, 습진, 화상 등에 특효라고 80년대 중반 남획하여 지금은 구하기 힘든 귀한 풀이다.
한옥과 어울리는 것이 또 한복이다. 경복궁 안팎에서 한복 입은 타인종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흑인 상감마마가 용 문양 황금색이나 붉은색 곤룡포에 익선관을 쓰고 가고 남색 곤룡포 세자 복장을 한 동아시아 남성, 금비녀를 꽂고 금박 한복을 입은 중국 여성, 레이스 달린 화려한 한복 차림의 일본여성이 이 일대를 누비고 있다.
인근 한복집에서 보통 1만원(2시간 대여)~3만원(종일대여)이면 빌려 입을 수 있는데 고궁 담벼락, 기둥, 문, 근정전이나 경회루를 배경으로, 인생 최고의 사진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표정은 진지하기 짝이 없다. 한국말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
보는 시각은 각각인지라 전통 한복이 아닌 정체불명의 개량 한복을 입었다고 개탄하는 이들도 있긴 하다. 전통 한복은 품위있고 격조있는 자리에서 입으면 되고 일상적인 한복은 본인이 좋아하는 레이스와 금박을 달고 예쁘게 입으면 된다.
한편, 내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북한의 ‘조선옷차림 풍습’이 등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다. 저고리, 치마 등 우리가 한복으로 부르는 전통복식의 제작과 착용법으로 내달 2~7일 파라과이에서 열리는 제19차 무형유산위원회 논의를 거쳐 결정된다고 한다.
한국은 지난 2022년 국가무형유산으로 ‘한복생활’을 지정하긴 했으나 아직 한복과 관련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지는 않았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제도는 문화 다양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무형유산을 등재 부호하는 제도로서 먼저 등재됐다고 해서 배타적 독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추후 우리도 등재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등록 문화유산으로 광주와 산청, 밀양의 한옥들이 등재된 것처럼 북촌한옥마을이나 인근 삼청동 거리도 국가등록문화유산이나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되려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밝힐 학문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학술 세미나, 원형 복원을 위한 노력, 주민들의 이해, 공연전시회나 문화공연 등으로 사람들이 즐겨 찾고 이용하는 유익함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한옥이나 한복이나 세계인들이 애호하는데만 그치지 않고 힐링 아이콘이 되려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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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