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환율관찰국 재지정
▶ 보편관세 부과땐 강달러 고착화
▶한국 수출액 448억불 감소 전망
▶수출 줄면 내수회복 지연 불가피
2018년 3월 당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우려에 “급격한 쏠림이 있을 때 대처하는 정도라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안 되리라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최선을 다해 미국 측과 협의해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 다음 달 있었던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서 조작국 지정을 가까스로 면했지만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보다 상세히 공개하는 대가를 치렀다. ‘환율 주권’ 논란이 컸지만 조작국 딱지를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응이었다. 실제로 트럼프는 다음 해 “중국이 환율을 낮춰 우리의 사업과 공장을 훔쳤다”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압박했다.
이 같은 흐름에서 보면 미 재무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공식 지정한 것은 환율과 무역, 통상 부문에서 차기 미국 행정부가 상당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환율 관찰대상국인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대미 무역흑자와 경상수지 흑자를 대놓고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강달러(원화 약세) 요인인 보편관세와 대미 무역흑자 및 경상수지 흑자 축소가 상충하는 측면이 있어 정책의 난이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150억 달러 이상의 대미 무역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3% 초과 ▲8개월간 GDP 2% 초과 달러 순매수 등을 기준으로 관찰대상국을 정한다. 한국은 대미 무역흑자와 경상수지 흑자 등 두 가지 항목이 해당돼 관찰대상국이 됐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대미 무역흑자는 500억 달러로 미국의 환율관찰국 지정 요건을 세 배 이상 웃돈다. GDP에서 경상흑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3.7%로 미국 정부의 기준(3%)보다 높다. 외환시장 개입과 관련해 재무부는 “한국은 외환시장 개입을 시장 여건이 무질서한 예외적인 상황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2016년 4월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11월 관찰대상국에서 빠졌던 한국은 1년 만에 재지정됐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정부가 무역흑자와 환율, 내수 사이에서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보편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강달러가 더 고착화하고 한국의 수출과 무역흑자 규모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보편관세가 시행되면 한국의 총수출액이 최대 448억 달러가량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정부가 일부러 원화 가치를 낮췄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억울한 측면은 있다”면서도 “이번 환율 관찰대상국 지정으로 무역흑자를 줄여야 한다는 압박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거꾸로 이 과정에서 보편관세발 강달러가 원화 가치를 더 낮추고 이는 수출 경쟁력을 상대적으로 높여주는 측면이 존재한다. 근본적으로 약달러를 선호하는 트럼프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6.3원 내린 1398.8원을 기록했다. 나흘 만에 1400원 선에서 내려왔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화 절하는 관세 인상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전략 중 하나”라며 “하지만 환율 관찰대상국에 지정되면서 이 방법을 쓰는 데 어려움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더 큰 문제는 경기다. 내수 부진으로 수출 중심의 외끌이 성장을 해온 상황에서 수출마저 무너지면 내년 2% 성장은 장담이 어렵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미국의 ‘관세 폭탄’을 고려하면 내년 한국의 성장률이 1%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재부 역시 이날 내놓은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7개월 만에 ‘내수 회복’ 판단을 삭제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동안 수출이 회복세를 보인 덕에 경제 성적표가 개선됐다”며 “수출이 어려워지면 내수 회복을 이끌 동력도 떨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달 말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둔 통화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긴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경우 환율 상승 압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향후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하고 있어 내수만 놓고 보면 진퇴양난이다.
어떤 방향으로든 외환시장 개입도 어려워졌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강달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미국이) 허용할 것 같다”면서도 “그렇지만 이제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행동하기 전에 미국과 충분히 상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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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주재현·김혜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