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2기 전망 인터뷰-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어려운 항해 중인 배를 내부에서 흔들어 대는데, 높은 파도까지 몰아치는 형국.” 초대 금융위원장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을 지휘한 전광우(75)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을 이같이 표현했다. 부진한 내수와 정치적 논란에 가뜩이나 국내 정세가 불안정한데, 보호무역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세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대외적으로도 파고가 거세질 것이라는 뜻이다. 그는 13일 서울 강남구 세계경제연구원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트럼프 2기 핵심으로 ‘3고(고성장·고관세·고금리)’를 꼽았다. 세계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큰 변화가 예상되나, 특히 우리 경제를 ‘불황형 흑자’로 진단하며 타격이 더 클 것으로 봤다. 철저히 협상을 준비하며 개혁 진전으로 경제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2기 공약이 1기 때보다 강해졌다. 통상 등 여러 분야 국제 질서가 재편될 전망인데, 한국 경제 파급 효과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 “공약을 살펴보니 ‘3고(高)’가 나오더라. 미국 고성장 촉진을 위해 추진하는 감세에 따른 재정적자를 메울 방책으로 고관세를 감행,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재조장해 고금리 국면에 다시 들어설 수 있다. 우리 상황을 냉정하게 보면 자동차·반도체로 수출은 나쁘지 않지만 소비가 침체해 성장이 안 되고 있다. 무역수지 흑자가 많이 나는 게 좋은 것 같지만, 실제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거다.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로, 허약해진 상태에서 맞으면 충격이 훨씬 커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혜국 대우 조항 관련 보편관세 현실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고관세 이행 시 어떤 여파가 있을까.
▲ “한미 FTA 자체를 재협상해 보편관세를 실현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1기 행정부가 바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을 시작했던 걸 봐도 그렇다. NAFTA의 경우 재협상 시작 후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합의까지 1년여 소요됐다. 지난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444억 달러로 역대 최대인데, 미국 입장에선 적자를 보고 있는 만큼 칼을 갈 것이다.
대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특성상 직접적으론 보편관세로 대미 무역수지에 타격을 받고, 간접적으론 중국에의 초고관세로 대중 수출이 감소할 수 있다. 중국이 한국 중간재를 수입해 다시 수출하는 구조인 데다, 중국 소비 부진 심화는 우리 수출 피해로 이어진다. 수출 기업 실적 악화는 일자리 문제와 맞닿아 있다. 고용과 소비가 줄 수 있는 상당히 도전적인 상황이다.”
-고관세 대응 방안은.
▲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와 대화를 나눴는데 ‘후보자 트럼프로서 한 공약을 대통령 트럼프가 실행에 옮길 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고, 강경 기조로 나가겠지만 관세율 일부 조정이 가능할 것’이란 게 설득력 있는 관점이다. 고관세로 가격이 오르면 소비재 판매·유통기업을 통해 내부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1기 때 외국과 협상을 통한 조정이 있었던 게 근거다.
대응 핵심은 거래다. 극단적 제안을 해도 협상 여지를 남겨두는 게 트럼프 성향이다. 관세 파도가 높아질 것에 철저히 대비하되, 다양한 경제·외교 채널을 통해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한미 FTA를 개정하면 어떤 수준까지 할 것인지 준비 작업이 충분해야 한다. 수출·투자시장 다변화, 품질 경쟁력 관련 최첨단 기술력을 강화하는 것도 과제다.”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와 과학법(칩스법) 관련 보조금·세액공제 혜택에 한국 기업이 투자했는데 법안 폐기가 거론된다.
▲ “IRA, 칩스법 완전 폐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대미 투자가 이미 상당 부분 이뤄지고 계약 진행 중이라 되돌리기 어렵다. 두 법안으로 실질적 수혜를 받은 텍사스·테네시·미시간 등 공화당 의원이 대표인 보수 주가 적지 않아 이의 제기 개연성도 충분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절충점은 혜택을 축소하는 방향이다.”
-친환경 관련 규제도 폐기를 추진해 관련 기업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 “상대적으로 신재생 에너지 등 친환경 산업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은 하나의 추세이고, 속도·규모 차이일 뿐 결국 태양광·풍력·조력 등을 어떤 형태로든 확대해 나가는 게 맞다. 트럼프가 신재생 에너지에 거리를 두고 비판하나, 실제 1기 통계를 보면 신재생 에너지 투자가 굉장히 빨리 늘었다. 정치적 수사와 현실에 간극이 있었다는 얘기다.”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 “결국 미국이 부족한, 필요한 부분을 얼마나 보완해 줄 수 있냐에 따라 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업이 있다. 조선업 구도는 시장의 50% 이상 차지하는 중국이 1위, 한국이 2위, 일본이 3위다. 초미의 관심사는 중국이 대만을 어떻게 하느냐다. 유사시 대대적인 해군을 보내야 하는데, 함정 노후화로 해군이 미국 군사력의 가장 약한 고리로 지목되고 있다. 선박 수출뿐 아니라 유지·보수·운용(MRO) 분야도 기회다. 중국에 맡길 순 없는데, 일본보다는 한국 역량이 크다. 트럼프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의례적 첫 통화에서 바로 언급한 것만 봐도 이미 꽂혀 있다는 거다. 관세든 주한미군 비용이든 곳곳에서 이런 협상카드를 전략적으로 찾아 써야 한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다. 트럼프는 저금리를 표방하나, 공약은 고물가가 불가피해 금리인하 기조 유지가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 “한국 성장률과 경상수지 전망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선반영, 외화가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단기 등락은 있을 수 있으나 원화 강세로 돌아설 반전 요인은 없다. 공약 중 상호 모순적인 부분이 많은데 고관세, 감세가 경제를 띄우니 기대하는 저금리로 가긴 어렵다. 관세로 감세분을 메우긴 부족한 만큼 재정은 악화할 것이다. 독립성 침해 시도에도 연방준비제도는 자율적 판단을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내년에 금리 하향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은 줄었다.”
-미 증시는 ‘트럼프 랠리’가 이어지는 반면 코스피는 2,400선까지 떨어졌다. 한미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심화하고 있다.
▲ “개인·법인 세금을 낮춰주고 금융 규제를 완화한다고 하니 미국 시장이 뜰 수밖에 없다. 외국인 투자자는 물론, ‘동학개미’마저도 국내 주식을 팔고 떠나지 않나. 가장 단순한 주가 결정 모델을 생각해 보면 분모엔 리스크, 분자엔 미래 수익성이 영향을 미친다. 분모(리스크)가 작을수록, 분자(미래 수익성)가 클수록 주가가 높아지는 것이다. 한국은 북한부터 해서 정치·사회 불안정성이 큰데, 수출 타격 등 위험 요인이 더 커졌다. 분모는 커지고 분자는 작아진 셈이다.”
-정부에 제언한다면.
▲ “원천적으론 대외 충격을 막기 위해 경제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 악화한 건설경기 관련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문제 등 꼭 필요한 부분엔 선별적 재정지출이 필요하고, 정체된 구조개혁을 하나라도 실질 진전시켜야 한다. 이미 현 정부 임기 반환점이다. 운동선수로 비유하면 뒷바람 불 때 뛰는 전반전에서, 맞바람 맞으면서 뛰는 후반전이 되는 격이다.
위기인 걸 뻔히 아는데 장밋빛 얘기를 하는 건 투자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 자칫 내년 성장률이 1%대로 갈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가 ‘현재 매우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 취약점을 알고 있고, 구체적 로드맵으로 해결해 나갈 확고한 계획과 의지를 갖고 있다’는 위기의식 아래 다각도로 특단의 대책을 준비하는 모습이 투자자와 국민에 믿음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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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