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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 펀치’ 맞아 위기…‘애니콜 화형식’ 수준 칼뺀다

2024-10-10 (목) 서울경제=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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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대대적 쇄신 예고

▶ 파운드리 분사설 선 그었지만 고객사 확보 등 돌파구 못찾아
▶갤노트7 발화 후 첫 공개 사과
▶초격차 균열 명확한 진단 제시

삼성전자 수뇌부가 8일 3분기 잠정실적 발표 직후 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사과문을 발표하자 재계에서는 “깜짝 놀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과거 ‘갤럭시 노트7’ 스마트폰 배터리 발화 등 사고가 터졌을 때 경영진이 나서 사과를 한 적은 있어도 단순 실적에 대해 반성문을 쓴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 초격차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의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실적 부진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1995년 단행한 ‘애니콜 화형식’ 수준의 쇄신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 반도체 실적 부진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당장 업사이클에 올라타는 듯했던 반도체(DS) 부문의 영업이익이 뒷걸음질쳤다. 삼성 DS 부문의 3분기 영업이익은 2분기(6조 4,500억 원)보다 2조 원가량 낮은 4조 원대로 예상된다.


우선 메모리 평균 가격이 하락했다. PC용 범용 D램 제품인 DDR4 8GB의 9월 기준 평균 고정 거래 가격은 1.7달러로 메모리 업사이클에 힘이 실렸던 4월(2.1달러) 대비 24%가량 하락했다. 고정 거래 가격은 기업 간 대량 거래 가격으로 메모리 수급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인공지능(AI)의 온기가 스마트폰이나 PC 등 정보기술(IT) 기기의 수요까지 자극하지는 못해 주요 세트 업체들이 재고 조정에 나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여기에 중국 메모리 업체의 범용 D램 물량 공세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1위 D램 업체인 CXMT는 2020년 월 4만 장(웨이퍼 기준) 수준이던 D램 생산 능력을 현재 월 20만 장으로 늘렸고 2025년 말에는 30만 장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순 생산 능력만 두고 보면 내년 말 기준 시장점유율이 16% 선에 이르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 역시 “중국 메모리 업체의 레거시(구형) 제품 공급 증가가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물론 CXMT의 D램 공정 노드는 17㎚(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으로 삼성전자 등과 비교해 3~4년 수준의 기술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안정적인 범용 D램 시장을 빼앗기고 나면 향후 특정 시점에 이익 절벽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장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반도체 다운턴이 올 때마다 중국 반도체 기업이 정부 보조금을 바탕으로 삼성 등 국내 업체와 조금씩 격차를 줄여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의 고민인 고대역폭메모리(HBM) 퀄(품질 검증)도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당초 시장에서는 삼성이 늦어도 9월 중에는 엔비디아에 대한 HBM3E 퀄을 마무리해 4분기부터 본격 납품을 진행할 것으로 전망해왔으나 이 과정이 지속적으로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 또한 이례적으로 “주요 고객에 대한 HBM3E 공급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통상 고객사 문제에 대해 함구해왔던 관례를 깨고 제품 검증이 더 늦어질 수 있다고 밝힌 셈이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 인식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2위에 밀릴 수 없다는 자존심에 얽매이지 않고 문제를 솔직히 인정했다는 점에서 비로소 삼성다운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도 이날 발표한 공개 사과문에서 “단기적인 해결책보다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의 ‘아픈 손가락’인 파운드리와 시스템LSI(반도체 설계)는 3분기 들어 적자 폭을 더욱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증권가에서는 파운드리 및 LSI 부문의 3분기 적자가 1조 5,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1조 원 안팎이던 예상 적자 전망치를 크게 밑돈 수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7일(현지 시간) 필리핀을 방문해 “파운드리 사업부의 성장을 갈망한다”며 분사설에 선을 그었지만 2나노 이하 첨단 공정에서 빅테크 고객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과 동시에 가동률도 낮아지는 등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삼성은 반도체 외에 모바일·가전·SDC(디스플레이) 등에 대해서는 “갤럭시 Z폴드6 등 플래그십 스마트폰 판매가 호조를 보였고 SDC는 주요 고객사의 신제품 출시 효과로 일부 개선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서울경제=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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