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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가방

2024-10-03 (목)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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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장을 은퇴한 후 여행을 즐겨 다닌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딱 맞는 가방을 고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매번 가방을 꾸릴 때마다 여행의 목적과, 계절, 장소에 따라 그 내용물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내인가 해외인가, 장기인가 단기인가, 이동이 많은가 적은가, 정장과 구두가 필요한가 없어도 되는가 등에 따라 짐 내용이 달라지니 그걸 담을 가방도 당연히 달라진다.

어떤 사람들은 짐을 꾸리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가방을 꾸리면서 의견이 달라 얼굴을 붉힐 때도 있다. 남편은 최소한의 짐을 간단히 등산용 백팩에 꾸리는 편이고 나는 혹시 다른 일행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사고나 응급상황에 필요한 것과 약품 등까지 준비해서 넣기 때문에 짐이 많다. 어떤 짐이든 여유 있게 다 들어가는 친절한 가방이 있으면 좋겠지만 어디 그런 가방을 쉽게 찾을 수 있겠는가?

여행 가방에 따른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했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 알맞은 가방을 고르지만 별로 신통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지난해 아프리카 여행 때였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호텔에 큰 가방을 두고 3박4일 탄자니아, 세렝게티의 사파리 구경 갈 때는 큰 버스로 이동하였기에 기내용 바퀴가 있는 가방과 작은 손 가방으로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남아공의 킴벌리 공항에서 경비행기로 케이프 타운 공항으로 이동할 때는 작고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이 편리했다. 팔 힘이 없는 나는 바퀴 달린 소형 슈트케이스를 선호하지만, 비포장도로에서는 덜그럭덜그럭 시끄럽고 바퀴가 쉽게 고장이 난다.


여행 갈 때마다 내가 애용하는 작은 끈 가방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어느 여행사에서 선물로 받은 검은색 비닐 가방이다. 사용해 보니 아주 편리하고 가볍고 탄탄하다. 앞뒤로 웬만한 여권, 책 한 권, 항공권, 핸드폰 등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지퍼 주머니가 있고 안으로도 돈이나 귀중한 것을 넣을 두 개의 작은 지퍼 주머니와 한 벌의 내의와 세면도구, 간단한 화장품, 약, 선 글라스 등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주머니가 두 개가 있어서 일일 여행에도 좋고, 장거리 여행 때 손가방으로 어깨에 멜 수 있어서 편리하다. 비닐이라 대충 방수도 돼서 배를 타고 나가거나 폭포 구경을 갈 때도 좋다. 또 더러워지면 물 빨래하면 새것처럼 반질반질해진다.

가방 하나로 3~4주 여행할 수 있는 크기의 마땅한 가방을 찾지 못했다. 가능한 작은 손가방과 한 개의 큰 가방으로 짐을 꾸리려고 한다. 요즘 항공사마다 가방이 하나 이상일 때마다 요금을 더 내게 하고 짐 찾을 때도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출장을 자주 다니는 아들이 가르쳐 준 대로 작은 빨랫비누 한 조각을 가지고 가서 틈나면 옷을 깨끗이 빨아 입는다. 대신 쉽게 마를 수 있는 소재의 옷을 준비한다. 그리고 오래 입어서 낡았다든가 버려도 되겠다는 속옷, 양말 등을 가지고 가서 입고 호텔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 여유가 있는 자리에 혹 쇼핑한 물품들을 가져오면 다른 가방을 꾸리지 않아도 돼서 좋다. 물론 쇼핑을 넘치게 많이 했다면 그도 소용이 없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방은 명품은 아니지만 그 가방에 명품의 영혼을 담고 싶다. 여행 가방의 무게와 부피, 그리고 내용물에 따라 여행의 질과 품격이 달라진다. 어느 시인은 인생을 잠시 세상에 소풍 나온 것이라고 했다. 소풍 같은 한 평생 살아가는 동안 우리 안에 어떤 내용물을 어떻게 채우며 살아가는 가는 그 삶의 질과 품격을 결정짓는다. 내 영혼을 풍요롭게 만드는 감사를 담을 수 있는 작은 가방, 그것이면 어디를 가든지 행복하다.

다음 여행에는 사랑의 나눔으로 채울 큰 가방 하나와 작은 비닐 가방을 들고 가려고 한다.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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