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죄수들의 어머니

2024-09-09 (월) 임형빈 한미충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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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개월 전 한국일보 오피니언 난에 ‘남을 위한 삶’이란 제하에 6.25 사변 당시 거제도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맹의순씨 감동 어린 이야기를 소개한 바 있다. 그는 투철한 신앙인으로 인정받아 수용소 병원에서 일을 보게 되었다. 틈만 있으면 인민군환자들을 찾아 다니며 성경을 읽어주고 중공군 환자들도 찾아가 그들이 알아 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그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주고 그리고 아무 쪽 병사나 차별 없이 거동이 불편한 포로들의 얼굴과 손과 발까지도 씻어주었다.

그래서 공산군 병사들은 거제도의 성자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맹의순 자신도 불치병 뇌암을 가지고 있어 중공군의 발을 씻기던 중 그 자리에 쓰러져 영원히 눈을 감았다. 맹의순의 죽음을 보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미군 군위관도, 한국인 간수도, 인민군도 중공군도 모두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는 감동어린 스토리였다.

이번에는 최효섭 박사의 글 중에 20세기 초 감옥에서 인도주의의 개혁을 일으켜 미국전역의 교도소 개량 운동의 선봉자가 된 루이스 로스(Lewis Laws) 와 그의 아내 로스 케더린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로스의 집은 감옥에서 뻔히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그들은 집만 다를 뿐 늘 험한 죄수들과 함께 살다시피 했다. 두 아들도 죄수들과 야구, 농구를 하게 하며 키웠다. 맹인 죄수를 위하여 점자를 배워 가르치고 벙어리 죄수를 위하여 수화법을 배워 가르쳤다. 특히 부인 캐더린은 죄수들의 어머니가 되어 수많은 죄수들을 친 가족처럼 돌봐 이 부인에 감화되어 새사람이 될 결심을 하고 죄수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러다 로스 여사는 1937년에 일찍 별세하였다.

로스 여사의 운구가 묘지로 떠나던 날 죄수들이 모두 정문으로 모여들어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죄수의 대표들이 형무소장을 찾아와서 로스 여사에게 우리의 사랑과 감사를 전하고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로스 여사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아는 형무소장은 모험적인 결정을 했다. 감독관 없이 갔다오도록 전원에게 자유를 준 것이다. 사고가 나면 소장이 대신 감옥에 갈 각오를 한 것이다. 미국 형무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마침 형무소에서 장지에 이르는 길가에는 들꽃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두가 들꽃을 꺾어 들고 운구를 따랐다. 하얀 꽃들이 행렬을 이루어 그 길이가 800m나 달하였다. 이날 감옥 문을 나간 죄수 600여 명 한 명도 도망자 없이 전원 형무소로 귀환하였다. 정말 감사할 때 사랑의 통로가 열리고 인류에는 희망이 생긴다. 정말 감사의 파도가 나를 채울 때 감옥의 철창도 필요 없어지고 인간 사이의 담도 무너진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임형빈 한미충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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