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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지대 없다”…주택침입 강절도 ‘비상’

2024-08-27 (화) 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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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7,219건, 4년간 40% ↑
▶밸리 한인 1년새 세번 피해

▶ “집 모자이크 처리” 요청까지
▶총기 구입·경비원 등 자구책

노스리지에 거주하는 윤모씨는 얼마 전 십년 감수할 만한 일을 경험했다. 아내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했고 윤씨는 집에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아내가 나가고 몇 분 후 윤씨 집 정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문 밖을 살펴보니 공사장 인부 복장을 한 남성 3명이 집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집 앞에 달아놓은 보안감시카메라(CCTV)에서 알람이 울렸어야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울리지 않았다. 남성 3명은 빠르게 윤씨 집 뒷마당 쪽으로 이동한 뒤, 유리문을 깨고 침입을 시도했다.

윤씨는 즉각 경찰에 신고하는 한편 크게 소리를 질렀다. 집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3명의 남성들은 집 앞에 세워놓은 차량을 타고 황급히 도주했다. 올해 들어 2번째, 지난해까지 포함하면 1년새 세번째 주택침입 강절도 시도였다.


LA 지역 치안이 악화되며 가장 안전하게 느껴야 할 내 집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닌 상황이 됐다. 한인타운을 비롯한 LA 전역에서 2020년 이후 주택침입 강절도가 급증하자 한인들을 포함한 주택 소유주들은 구글 지도에 자신의 집을 모자이크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총기를 구매하고 사설 경비원을 고용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LA경찰국(LAPD)에 따르면 LA 지역 주택과 아파트 침입 강절도 사건이 2020년 5,173건에서 2023년 7,219건으로 약 40% 증가했다. 지난 주 도미닉 최 LAPD 임시국장은 올해 주택침입 강절도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 정도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난 달에는 엔시노, 타자나, 셔먼옥스 등 샌퍼난도 밸리 지역에서만 한 달 새 약 20건의 침입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증가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LAPD는 해당 지역의 순찰을 강화하고 주민들과 면담을 진행하며, 전문 부서의 형사들을 배치해 강도 추적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효과적인 대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범인 체포율은 2020년 104명, 2021년 187명, 2022년 146명, 2023년 172명으로 신고된 건수의 3%에 불과한 상황이다.

넘쳐나는 주택침입 범죄 속에 한인들의 피해 사례도 늘어가고 있다. LA한인타운 지역 대부분을 관할하는 올림픽경찰서 관내에서 올해 1월1일부터 3월9일까지 빈집털이 절도가 총 205건 발생했다.

하루에 3건 꼴로 빈집 절도가 발생한 꼴인데, 이는 작년 같은 기간의 165건과 비교해 24.2%, 재작년 151건과 비교해 35.8%가 늘어난 수치다. LA 한인타운 뿐만이 아니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어바인 지역과 샌퍼난도 밸리, 사우스베이 지역에서도 절도 피해는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올해 초 어바인 지역에서는 35일 동안 34건의 주거지 절도가 발생하며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지난 5월 가디나에 거주하는 주민 이모(62)씨는 집 앞 정원에 물을 주다가 화단 구석에서 얼핏 나뭇잎처럼 보이는 몰래카메라를 발견(본보 5월30일 A3면 보도)하기도 했다. 이씨는 “즉각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만 말하고 돌아갔다”고 전했다.


부촌인 브렌트우드와 베벌리글렌, 베벌리우드, 벨에어, 퍼시픽 팰리세이즈 지역에서도 주택침입 강절도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26일 LAPD는 경보를 발령했다. LAPD 관계자는 최근 이 지역에서 2~4명 무리의 절도단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주택에 침입해 보석, 핸드백, 현금 등을 훔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주로 와이파이 재밍(wifi-jamming)이라는 무선 네트워크 무력화 수법을 동원해 감시카메라와 경보장치를 무력화시킨 뒤 주택 배수관이나 발코니 등을 타고 2층으로 침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러하자 한인들을 포함한 주택 소유주들은 구글 지도에 자신의 집을 모자이크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총기를 구입하고 사설 경비원을 고용하는 등 자구책에 나서고 있다.

지난 23일 ABC뉴스는 남가주 일대 주택 소유주들이 잠재적 강도를 막기 위해 구글 지도에 집을 흐릿하게 만드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달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은 샌퍼난도 밸리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총기를 구매하거나 사설 무장경비업체를 고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LA 타임스가 이달 초 보도하기도 했다.

<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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