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은 가득히’ 등 명작 수십편에 ‘잊지못할 존재감’ 각인
▶ “최고 스크린 유혹자”…한국서 ‘아랑드롱’은 미남 대명사
▶ 마크롱 “프랑스의 기념비적 존재, 우리 삶에 큰 영향” 추모
프랑스의 전설적 영화배우 알랭 드롱 [로이터=사진제공]
걸출한 외모, 연기력, 카리스마로 지난 세기 지구촌 영화 팬의 마음을 사로잡은 프랑스의 전설적 배우 알랭 들롱이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들롱의 세 자녀는 18일(현지시간) AFP통신에 전한 성명에서 아버지 들롱이 투병 끝에 이날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자녀들은 "알랭 파비앙, 아누슈카, 앙토니, 루보(들롱의 반려견)는 아버지의 별세를 발표하게 되어 매우 슬퍼하고 있다"며 "그는 두쉬에 있는 자택에서 세 자녀와 가족들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파리 남부 교외에서 1935년 태어난 들롱은 아기 때부터 탁월한 외모를 뽐낸 것으로 전해진다.
만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모친이 유모차에 '만지지 마시오'라는 문구를 적어놓은 적이 있다고 본인이 회고한 바 있다.
들롱은 부모의 이혼과 잦은 퇴학으로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해군에 17세에 자원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복무했다.
그 뒤에 웨이터, 시장짐꾼 등을 전전하다 칸영화제에서 우연히 영화 제작자의 눈에 띄어 영화계에 입문했다.
들롱을 스타덤에 올린 영화는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였다.
그는 자신을 무시하는 부잣집 아들과 지중해에서 요트를 타다가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소시오패스 청년 리플리를 충격적으로 연기해냈다.
들롱은 '태양보다도 강인한 눈빛'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의 외모와 매혹적 눈빛은 전 세계 영화 팬을 유혹하기 충분했다.
명작을 통해 주목을 받게 된 들롱은 '세기의 미남'이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누렸다.
그는 '태양은 가득히' 이후 특유의 퇴폐적인 매력을 앞세워 주로 누아르 작품에 출연하면서 살인자, 악당, 경찰 등을 연기했다.
중년을 지나면서도 녹슬지 않는 연기력과 카리스마를 유지하면서 프랑스 국민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1957년 영화계에 데뷔한 후 50여년간 평단과 대중의 환호 속에 9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출연작 가운데 무려 80여편에서 주연을 맡을 정도로 프랑스의 독보적인 톱스타였다.
대표작으로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태양은 외로워'(1962), '볼사리노'(1970),' 암흑가의 세사람'(1970년), '조로'(1975) 등이 있다.
주요 언론들은 들롱을 현대 영화사에서 지울 수 없는 존재로 평가했다.
AFP 통신은 "들롱은 프랑스 최고의 스크린 유혹자였다"고 규정했다.
AP 통신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영웅을 연기하든 로맨틱한 남자 주인공을 연기하든 들롱의 존재감은 잊을 수 없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들롱은 스타 그 이상"이라며 "프랑스의 기념비적 존재"라고 추모했다.
그는 "들롱은 전설적 배역들을 연기하며 전 세계를 꿈을 꾸게 했다"며 "그의 잊을 수 없는 얼굴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들롱은 한국에서도 지난 세기에 은막과 브라운관을 뜨겁게 달구면서 큰 인기를 구가했다.
조각 미남으로 1960~1980년대를 풍미한 배우 신성일이 '한국의 아랑 드롱'으로 불릴 정도로 그의 이름은 한국에서 미남의 대명사로 통했다.
들롱이 출연한 영화는 내용이 난해한 경우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그의 영화는 당시 안방에서 해외 영화를 접할 수 있는 통로였던 TV 프로그램 토요명화와 주말의명화의 단골이기도 했다.
들롱은 다작한 배우였으나 1990년대 이후로는 스크린에서 거의 볼 수 없었고, 2017년 영화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말년에는 영화 산업이 돈에 망가졌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2003년 잡지 기고문에서 "돈, 상업성, 텔레비전이 꿈의 기계를 망가뜨렸다. 내 영화도 죽었고 나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들롱은 2019년 뇌졸중으로 쓰려진 이후에는 쭉 투병 생활을 해왔다.
그의 아들은 올해 초 언론에 들롱이 림프구 암인 B세포림프종 진단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들롱은 2021년에는 안락사 찬성 의견을 밝혀 해묵은 논란에 불을 댕기기도 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병원이나 생명유지 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떠날 권리가 있다"며 "안락사는 가장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듬해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향후 건강이 더 나빠질 경우 안락사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들롱은 뇌졸중 수술을 받은 뒤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스위스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등장한 것은 2019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였다.
그는 당시 칸영화제 행사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가 정말 유일하게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제 경력"이라며 영화 인생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