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콜버트 I. 킹 칼럼] 오직 트럼프만이 좋아하는 구호

2024-08-14 (수) 콜버트 I. 킹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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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이념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할만큼 했다. 진보, 중도, 극좌 등의 꼬리표 논란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대선 후보의 이념적 성향에 집중하다보면 되도록 많은 유권자를 투표소로 끌어내는 중차대한 작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올해의 선거는, 그 어느때보다, “만인을 위한 자유와 기회 및 정의”를 추구하는 쪽에 투표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같은 목적을 달성하려면 두 차례나 탄핵 소추된 중범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러닝메이트인 정치판의 철새 J.D. 밴스를 백악관에서 가급적 멀찍이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

누가 통치하고, 누가 낙선의 넋두리를 늘어놓게 될 지는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그래서 선거가 중요하다. 우리는 이처럼 간단한 사실을 조금 더 일찍 배웠어야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을 돌아보라. 연방 대법원은 기본권을 보호하는 오래된 법적 절차를 뒤집었다. 지금의 사법부는 “보수화된 집단”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주장은 옳다. 백악관이 작성한 팩트시트가 적시하듯 법원은 “민권보호조항을 폐기했고, 여성의 선택권을 앗아갔으며 대통령이 임기중 저지르는 범죄행위에 광범위한 면책특권을 부여했다.”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의 의지만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에겐 조력자가 있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두 달전인 2016년 9월, 필자가 쓴 칼럼의 한 대목을 되새겨보자: “그가 지명하려는 우익 연방판사 후보들의 명단은 전율을 일으키게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우리는 시민적 자유, 투표권, 소비자 권리와 생식권에 작별인사를 고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시절의 공약을 그대로 이행했다. 그가 지명한 연방 대법관 후보들은 그로부터 1년 후, 로우 대 웨이드 판결에 칼질을 가했고 소수계 우대법인 어퍼머티브 액션 프로그램을 폐기했다. 미래의 대통령을 들러리로 세워가며 트럼프가 재임중 저지른 범죄행위에 “교도소행 면제” 카드를 쥐어준 당사자도 트럼프에 의해 거의 완전히 탈바꿈한 연방 대법원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선거는 중요하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격전 주에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투표율이 크게 떨어진 탓에 전국 득표율에서 앞선 힐러리 클린턴이 선거인단 확보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니아,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투표를 하지 않은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위험한 공약 실행을 도운 셈이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에게 패배를 안긴 요인은 지지층의 낮은 투표율이 전부가 아니었다. 흑인 유권자를 겨냥한 트럼프 캠프의 대대적인 흑색선전과 로버트 S. 뮬러 특별검사의 2019년 보고서에 상세히 기록된 러시아의 선거개입으로 클린턴은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민주당 내부의 좌파 세력도 그녀의 지지기반을 허무는데 손을 보탰다.

지난 2016년 정치전문 잡지 폴리티코 5월호에 게재된 빌 쉐어의 기고문 “좌파는 왜 힐러리를 증오하는가?”는 그녀가 맞서야 했던 당 내부의 반발과 저항을 보여준다. 힐러리의 정치 경력과 대선 캠페인을 한 눈에 꿰뚫은 쉐어의 통찰력 넘치는 기고문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아마도 그것은 힐러리가 운동-스타일의 정치에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급진적 유권자들의 인식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현재 시점으로 돌아가자. 지난 수요일 미시간 집회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자들이 “카멀라, 당신에겐 숨을 곳이 없다. 우린 인종학살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반복해 외치자 그녀는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를 원한다면 그렇다고 말하라”고 응수했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민주당 팀이 친-팔레스타인, 반-이스라엘 진영으로 기울었다고 몰아세운다. 해리스가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러닝메이트로 선정하자 브라이언 도널즈 하원의원(공화-플로리다)은 “하마스의 비위를 맞추고 이스라엘을 전혀 지지하지 않는 또다른 좌익 민주당원을 부통령 후보로 골랐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역시 독자적으로 온갖 비방을 쏟아냈다. 트럼프는 폭스 뉴스에 출연해 “모두가 조시 샤피로 펜실베니아 주지사가 해리스의 러닝메이트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며 “단언하건대 샤피로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유대인이라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것이라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이스라엘이라면 (해리스-월즈) 팀에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 팀은 유대인이나 이스라엘 모두에게 최악의 조합”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와 도널즈는 하마스와의 전쟁과 가자지역에 발이 묶인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처한 비인도적 상황과 관련해 이스라엘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려 든다. 그것이 트럼프와 밴스가 공유하는 목표다. 트럼프는 이스라엘-하마스 문제를 이용해 민주당 강세지역인 미시간과 미네소타에 반-민주당 정서를 조장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챙길 수 있다고 본다. 바이든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강력한 압박을 가하길 꺼린 사실을 앞세워 해리스-월즈 티켓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인들 사이의 분열를 활용해 권력을 추구하는 트럼프와 그 일당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 넘어가선 안된다. 이념적 분열의 끝없는 토끼굴로 빨려들어가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의 말대로) “완벽한 것이 좋은 것의 적이 되게 해선 안된다.” 또한 사회적, 문화적 차이를 공동의 선을 위한 다양한 가치보다 중시해서는 안된다.

공동의 선으로 연결되는 다양한 가치는 우리 모두를 “자유와 기회와 정의로 충만한 미국”이라는 이상에 성큼 다가서게 만든다. 올해 선거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콜버트 I. 킹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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