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세인

2024-08-10 (토) 여주영 뉴욕 고문
크게 작게
요즘은 여기저기서 ‘100세 시대‘라는 말들을 많이 하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그만큼 길어졌다는 이야기다. 100세가 되면 한 세기를 뜻하는 century의 어원에서 따온 ‘백세인(centenarian)’이라고 부른다. 미 워싱턴대학교 연구팀은 2100년이 되면 인간의 기대수명이 124세까지 늘 가능성을 99%로 예측했다.

100세 시대에는 이제까지 해온 일반적인 삶의 주기는 옛말이 되어 버렸다. 주변에서 석사학위를 따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노년층의 교육과 학습의 양상도 완전히 달라졌다. 아니, 노청년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그들은 역사적인 사명을 띠고 있는 나이든 청년들인지도 모른다.

해방 전인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태어난 100세인들은 후손들에게 일본의 지배하에 살았던 시절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분들이 죽기 전에 그런 회고록들이 많이 나와 주면 좋겠다. 그들은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이후의 산업화를 한 몸으로 겪은 인류 역사상 가장 특별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들이니 하찮은 나이든 사람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은 요즘 40대에도 명예퇴직을 강요 당한다고 하는데, 50세에 은퇴를 하는 사람들은 살아온 만큼 또 반백년을 살려면 잘못하면 우울증이 올 지경이다. 누구나 웬만하면 90세까지 살 것이고, 평소에 건강관리가 좋았다면 백세는 현대사회의 당연한 귀결이 되었다.

그렇기에 백세시대의 행복한 하루하루를 준비하고 만들어가기 위해 당장 은퇴해 소셜연금을 받기 시작할 때부터 단단한 실천이 필요하게 되었다. 든든한 노후란 단순히 은행에 돈이 쌓여 있다고 오는 것일까.

여러 형태의 안전한 자산관리에 달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백세인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과 건강한 몸, 그리고 활발한 사회적 관계가 아닐 런지... 이것만 있다면 돈 부자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노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뉴욕사회의 큰 어른인 임형빈 회장이 올해 백세를 맞이해 여기저기서 생일잔치를 열어주었다. 백세를 맞이하는 노령의 어른들은 어딘가에 또 있을 것이다. 몇 년 후에는 백세에도 현직에서 사회봉사를 하거나 커뮤니티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도 보일 듯 싶다.

백세 이후 109세 까지를 준초백세인(semi-supercentenarians)이라고 하는데, 10년 후에는 이런 분들의 사진이 신문지면에 왕성한 사회활동으로 올라오는 날이 올 것이다. 마침 ‘백세인생’이라는 노래가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육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팔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 백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어쩌면 진정한 백세인은 현재의 물리적인 나이를 정신적으로 초월해서 살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굳게 믿고 사는 70세 나이의 노청년은 100세까지 무려 30년의 시간, 즉 한 세대를 더 살 수 있는 두 번째 찬스를 부여받은 행운아라고 자신을 여길 것이다.

실제로 임형빈 회장은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음을 만천하에 증명했다. 백세청풍(百世淸風)의 기운으로 장수한 그에게서 노하우를 전수받으면 좋겠다. 백세시대에 걸맞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그의 노하우에 대해 관찰해본 결과, 그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의 기본은 규칙적인 운동과 사회활동, 균형잡힌 식습관인 것 같다. 물론 그 외에도 숨겨진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백세시대는 현대사회의 축복이다. 진시황이 그토록 간절하게 바랐던 미래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여주영 뉴욕 고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