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녹색 눈의 괴물

2024-07-30 (화)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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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와 질투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의 하나다. 뇌 속에 드폴트 되어 있어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살이에 항상 붙어 다닌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삶의 여정 중 만나는 필요악이다. 자신에게 없고 타인은 가질 수 있는 소유와 성취에 대해 분노나 부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다. 정신의학적으로 배도 아프지만 마음이 더 아픈 신체화 증상이다. 시기 질투는 자기보다 월등히 잘 난 대상이 아니라 비슷한 환경에 가까이서 생활하는 사람들한테 주로 나타난다. 인간만이 아닌 그리스 신들, 외람되지만 하나님도 가지고 계신다는 만악의 감정인 것이다.

정신과는 보통 시기와 질투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나 가끔 상황에 따라 구별하기도 한다. 자기에게 없다는 감정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면 분노(Envy)에 가깝고 질투(Jelousy)는 자신의 소유나 성취를 누군가에게 뺏길거라는 두려움이 많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시기 질투에 눈이 멀면 과도하게 담즘이 분비되어 눈이 녹색으로 변한다고 믿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에서 시기 질투는 녹색 눈의 괴물로 상징된다. 오샐로 왕은 왕비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신하 ‘아아고’의 꾀임에 넘어가 홧김에 왕비를 죽이고 만다. 후에 사실이 아님을 알고 오셀로는 절망과 후회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렇게 시기 질투는 옛부터 약방 감초같이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의 단골 주제로 쓰이고 있다.


외도(불륜, Infidelity)는 직장사회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생긴다. 매일 어떤 특정한 사람(이성 혹은 동성 포함)을 매일 얼굴을 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애정이나 매력을 느끼게 된다. 미국 기혼자의 20~25%, 특히 젊은 연령층에서 높게는 50%가 외도 경험이 있다는 통계 수치다. 자신을 소홀히 대하는 배우자를 향한 분노, 만족스럽지 못한 결혼생활, 스트레스로부터 탈출, 충동적 일탈 행위 등이 외도의 요인들로 지목한다.

그러나 불륜은 배우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행복한 결혼생활과 만족한 가정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한 심리전문가들의 견해를 살펴 본다. 첫째, 진화론적 관점이다. 되도록 자손을 많아 남겨야 된다는 원시인의 DNA가 아직도 우리 뇌에 건재하게 살아 남아 있다는 것이다. 둘째, 생물학적 요인으로 사랑과 애착 호르몬 옥시토신 분비의 감소가 불륜을 부추킨다는 설명이다. 셋째, 뇌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면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중독의 하나인 불륜으로 이어진다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심리학 잡지에 의하면 불륜의 보다 더 많은 원인이 실은 배우자나 다른 특별한 이슈보다 그저 섹스를 더 하고 싶다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섹스를 더 하고 싶어 외도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죄의식과 죄책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들키지만 않으면 외도는 오히려 배우자를 향한 사랑과 단란한 가정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건조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는 자극제란 생각이 꽤 있다. 반면 외도가 들통나면 피해 배우자는 배신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심적, 정서적, 성적 고통에 시달린다. 그들의 자존심은 심히 상해 있고 결혼의 의미와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이런 부정적 사고와 시기 질투의 감정을 잘 제어하지 못하면 불안과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정신과의사는 우울증이 의심나는 환자를 대할 때 3가지 가능성을 따져 보아야 된다. 먼저 무슨 일이 잘 안될 때는 사람들이 공허감과 절망스러운 감정에 젖는다. 이는 매일 느끼거나 지속되지도 않는 단순한 우울감이다.병이 아니므로 치료가 필요 없다. 다음은 불안, 짜증, 우울 감정들과 무기력, 의욕저하가 PHQ-9(구글링하면 쇱게 찾음) 증상 중 5 가지 이상이 매일 매일 2주 넘게 계속 되면 일상생활과 인간관계를 잘 수행할 수 없게 만든다. 이 경우 임상적 우울증이라 진단 붙인다. 보통 우울증을 야기하는 스트레스란 방아쇠를 쉽게 찾을 수 있어 반응성 우울증이라도 부른다. 스트레스를 주는 방아쇠를 찾아 잘 해결해주면 치료는 그리 어렵지 않다. 마지막으로 우울 증상이 너무 심하고 방아쇠도 없고, 항상 세상을 뜨고 싶은 생각만 하고 있으면 내면성 우울증이라 한다. 전에는 맬랑꼬리아(Melancholia)로 불러 응급처치의 하나인 전기 경련 치료(ECT)를 주로 했다.

정신과 임상에서 만나는 피해 배우자들의 대부분은 외도란 방아쇠가 당겨진 반응성 우울증을 앓고 있는 케이스가 많다. 그래서 가해 배우자와 피해 배우자의 말을 반드시 들어 보고 치료 방향을 정해야 된다. 치유자는 종교의 가르침이나 가정평화를 위해 피해 배우자에게 일방적으로 용서하라, 이해하라는 순진한 종교 윤리성 조언은 통하지 않는다. 부정적 사고와 감정에 맞서 긍정적 행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마음 근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뇌과학적으로 말하면 파괴적 감정들을 편도체에 남겨 두지 말고 전전두엽으로 이동시켜 생산적 감정들로 승화시켜야 된다는 논리다. 그래야 녹색 눈의 괴물에 속아 아내를 죽인 오셀로같은 불행한 인생을 살지 않을 것이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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