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동의 옛 MBC 사옥 옆에 본채는 없는 가운데 3층 높이의 전망탑 하나가 덩그러니 서있던 것이 기억난다. 한국전쟁 때 곳곳이 파손되었으나 외벽은 단정한 흰 색으로 칠해져 있었으며 한 눈에 르네상스 양식의 고전적 건물인 것을 식별할 수 있었던 이 탑은 조선왕조 후기 러시아 공사관의 일부였다.
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의해 시해당한 그 이듬해인 1896년, 고종이 어린 세자를 데리고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는데 이 사건이 아관파천(俄館播遷)이었다. 부끄러운 역사였으나 한국정부는 문화재 기념물의 하나로 이 건물을 복원하고 고종이 피난 갔던 길은 ‘고종의 길’로 만들겠다고 했었다.
일본의 만행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와 있는 동안 고종은 친러내각을 만들어 난국을 돌파하려 했지만 1904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자 한국을 강제 합병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고종은 처음에는 청나라에 다음엔 러시아 마지막에는 미국에 의존하며 우왕좌왕하다 결국엔 왕조를 끝마쳤다.
지난 달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과 새로운 북러조약을 체결하고 전쟁 상태 시 즉시 군사적 원조를 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어 충격을 주었다. 이 일이 있자마자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미군의 항공모함에 승선해 한미동맹을 과시하며 유사시 북한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천명했다.
남북 모두, 강대국 뒤에 숨어 큰 소리 지르는 현대판 아관파천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당장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그 이후는 한반도의 번영을 위해 러시아와의 협력도 매우 긴요한 것인데 북러 밀착이 있었다고 해서 우크라이나에 무기 공급 운운은 원칙 없고 무능한 외교의 하수다.
몇 년 전 나는 제7회 세계 한민족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푸틴의 모교인 상트 페테르브르크 대학의 강당에서 ‘한국-러시아의 협력과 미래’라는 주제로 벌인 포럼에 러시아 측에서는 한반도 전문가이며 상원의원인 이그로 로가체프, 러시아외교아카데미 원장 유리 포킨 등이 참석해 토론 결과를 한반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기도 했었다.
1991년 한 러수교 이후 33년 간 한국과 경제협력관계가 커지는 가운데 러시아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 중 비교적 객관적이며 우호적인 위치에 있었다.
지금은 잠시 북한과의 이해관계로 그쪽에 경사돼 있지만 얼마든지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복원 해 나갈 수 있다. 이미 북한의 라진 항과 두만강변의 하산 간 철도가 개통된데 이어 장차 남한의 동해북부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 사업이 이루어지면 러시아에게는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경제 발전을, 한반도에는 유럽으로 달려가는 새로운 실크로드가 될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가 오고 있다. 앞으로 세계사는 유라시아에서 펼쳐질 것이고 한민족에게는 대륙에 길이 있음을 직시해야한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에만 올인 하는 외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아시아의 선도국가로서 확실한 질서 구축에 나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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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