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6.25사변 74주년

2024-06-28 (금) 문성길 전 워싱턴 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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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상잔의 비극, 왜 이 비극이 발발했을까? 한 때는 누가 먼저 이 전쟁을 일으켰을까로 왈가왈부 했었던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물론 스탈린의 승인 하에 북의 김일성의 남침은 기정사실이다. 허나 국내와 국제사정이 복잡하기 그지없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건 부질없는 지엽적 문제로 과연 무엇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는가, 하는 더 근본적인 것을 찾아보아야한다.

그 당시 국내 정세와 주변 강대국이란 국제적 관점에서 보아 시기가 문제였을 뿐 조만간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생 확률은 불을 보듯 천하가 다 아는 듯 했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오직 순진한 백성들만 세상 돌아가는 걸 몰랐었기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부모형제 자매들을 잃고, 헤어지고, 한마디로 생명과 재산, 영혼을 포함해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처참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영어로 한국 전쟁을 The Korean Conflict(한국 분쟁)으로 표현하는데 그 표현 자체가 잘못이 아닌가!

소련 스탈린의 한반도 진출권을 요구한 얄타회담, 남북 지도자들의 정치적 야심으로 의견 불일치, 미 국무장관 애치슨 선언(미 아시아 방어선 규정), 냉전시대의 시작은 불행의 전조였다.

뒤늦게 미국의 설득으로 일본을 상대로 선전포고 후 아시아 일대 전쟁에 참가한 소련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세력에 전전긍긍하던 차 급기야는 미국 국방성 일개 대령이 급조한 설계도(국무부 정책과장보 딘 러스크와 전쟁부 정책과장 찰스 본스틸)로 1945년 8월 소련과 한반도 분할이 이뤄지고 38선 경계가 지어졌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1945년 2월 얄타화담에서 스탈린은 쿠릴열도와 한반도 일부 점령권 보장 약속으로 독일 항복 시 대일 전쟁(1945년 8월9일 시작)에 참가해달라는 루스벨트의 요청을 수락한다. 소련의 지원을 받는 북의 김일성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승만은 각각의 정부를 세운다.

북한의 남한 침공의 결정적 최대 요인은 1950년 1월12일 내셔널 프레스 클럽 연설에서 행해진 미 국무장관(Dean Acheson)의 애치슨라인 발언이다. 이는 미국의 극동 방위선이 “알류선 열도에서 시작하여 일본 열도, 오끼나와와 필리핀에 이른다”해서 한마디로 한국과 대만이 제외된 것이다. “한반도는 유사시 미국 방어선 밖”이란 것이다.

북한의 절대적 군사력 우위와 스탈린의 승인, 미국의 잘못된 상황판단과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진통일만 외치던 이승만의 강경노선으로 민족 비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 6.25 동족상잔, 아니 미소 냉전의 최초의 비극이 한반도 우리들 앞마당에서 벌어진 최악의 참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국은 미국의 입장에서 전략적 가치가 없으며, 북한의 공격 시 부득이 한국을 포기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소위 ‘한국 포기론’이 그 당시 미국 조야에서 우세했던 것이 사실이다. 모든 상황이 소련과 북한의 오판을 유도한 것이다.

그 당시 미 합참의장이던 Omar Nelson Bradley 장군의 말을 인용한다면, “한국전쟁은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에 일어난 잘못된 전쟁”이다. 그러나 충분히 예견되었던 전쟁이자 민족의 비극이다.

오늘날도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게 강대국 놀음에 민족의 운명이 달려있는 현실을 직시하기를 조국의 위정자들에게 바란다.

<문성길 전 워싱턴 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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