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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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 = 고용 감소?…‘보이지 않는 손’은 단순하지 않다

2024-06-20 (목) 조원경 글로벌산학협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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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제와 고용의 관계, 일관되지 않다
▶19세기 말 실질임금 큰 변화 일어나
▶뉴질랜드서 최저임금제 최초 도입

▶ 영, 1909년 산업별 최저임금제 시작
▶미국선 대공황발 ‘뉴딜법’ 통해 초석
▶독일, 장기간 노사 협상에 일임하다
▶내수 진작 노리고 2015년부터 도입
▶‘경기 활성화 vs 고용 감소’ 이견 팽팽
▶최저임금 효과 단순히 점칠 수 없어
▶국가별 노동 환경 따른 연구 이어져야

최저임금제처럼 논쟁적인 경제 이슈도 흔하지 않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저소득층 삶의 질이 나아질 뿐 아니라 소득 증가에 따른 소비 증가로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대해 자영업자나 영세 중소기업은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은 산업경쟁력을 악화시킨다는 입장이다. 고용주가 임금은 올리면서 상품 가격은 올리지 않을까? 임금이 인상되면 기존의 유급휴가와 복리후생이 축소되거나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1만 원’을 돌파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 올해 최저임금 시급은 9,860원이다. 호주, 영국, 독일, 캐나다, 프랑스 등의 절반 수준이다. 혹자는 미국 연방 최저시급이나 일본의 전국가중평균액 1,004엔보다는 높다는 주장이다. 최저임금의 역사와 현대적 시사점을 분석해 봤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농업 중심 사회에서 기계 공업 중심 사회로 옮겨간 대혁명이다. 그 결과 근대와 현대의 수많은 노동운동이 영국에서 일어났다. 16세기부터 행해진 ‘인클로저 운동(enclosure)’은 산업혁명의 효시이다. 1차 인클로저 운동은 15세기 말~17세기 중반에 있었다. 영주가 양을 대규모로 방목하고 모(毛)를 팔아 큰돈을 벌려고 농민을 내쫓았다. 18세기 초~19세기 중반의 2차 인클로저 때는 대지주가 빈 땅에 울타리를 칠 수 있도록 정부가 법으로 권장했다. 땅이 개인 소유가 되자 살던 땅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 저임금 근로자 계층으로 전락했다. 불행히도 산업혁명 당시 근로자의 임금은 최소한의 일상생활마저 위협하는 낮은 수준이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실질임금의 현저한 변화가 일어났다. 실질임금이 노동생산성 변화를 크게 밑돌고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감소했다. 나라별로 자본주의 발전이 불균등하게 이뤄지면서 각국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큰 격차를 보였다. 한 나라 안에서도 노동자 간 임금 격차가 컸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임금을 올리는 조치를 취했다. 1894년 세계 최초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영국의 식민지였던 뉴질랜드에서 최저임금 제도를 법으로 정했다. 당시 뉴질랜드 해운 근로자들은 열악한 근로 환경과 낮은 임금에 항의하며 대규모 파업을 일으켰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산업조정 중재법’을 만들고 최저임금 제도를 실시했다.

영국이 지배하던 호주에서도 ‘공장 상점법’을 만들어 최저임금 제도를 시행했다. 이 법은 노동쟁의 조정이라는 한정된 목표가 아니라 저임금 개선을 목표로 했다. 노사정 3자로 구성한 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뉴질랜드와 호주의 제도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독점 자본주의가 공고화되는 시점에서 당대 자본주의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영국은 1902년 임금위원회법을 만든 후 임금위원회가 활동했다. 1909년 산업위원회법으로 산업별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미국(1912년, 주법), 프랑스(1915년, 가내노동법)에서도 유사한 조치가 이어졌다.

1979년 영국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70년 만에 최저임금제를 폐지했다. 신자유주의 신봉자인 그녀는 최저임금제가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실업률을 증가하는 악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이후 1997년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집권하면서 최저임금제가 부활했다. 당시 경영자들은 최저임금제 재도입으로 해고가 늘고 실업률이 높아질 거라 주장했다. 50여 개 대학의 80여 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된 결과 고용과 해고는 최저임금제와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영국의 국가최저임금은 1999년에 시행됐다. 1998년 제정한 국가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독립 자문기구인 저임금위원회의 검토와 권고에 따라 국가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한다. 2010년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역시 최저임금제가 실업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2016년 신설된 국가생활임금은 25세 이상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법정최저임금이다. 국가생활임금을 2020년까지 25세 이상 근로자 중위임금의 60% 수준까지 인상하도록 저임금위원회에 촉구했다. 영국의 최저임금제는 연령과 견습 여부에 따라 5개의 요율로 운영된다. 25세 이상 요율인 국가생활임금, 21~24세 요율, 18~20세의 청년개발요율, 16~17세 요율, 견습 요율로 구성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28년 최저임금결정제도 설정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다. 이후 주요 국가들은 대부분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데이비스-베이컨(Davis-Bacon) 법안이 1931년에 제정됐다. 후버 정부는 이 법을 통해 모든 연방 계약은 적정 임금을 따르기로 했다. 겉보기와는 달리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이민자들을 제거하고 노조에 가입한 백인들의 일자리를 지키려 한 것이다. 이 법안에 찬성한 이들은 아주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인종차별적 의도를 밝혔다.

진정한 의미의 최저임금제는 1933년 7월 국가산업부흥법에서 출발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대공황 경제 회생과 개혁의 골자가 담긴 일명 ‘뉴딜법’이다. 재정 지출 확대와 일자리 창출은 물론, 노조 권한 강화와 최저임금제, 아동노동 철폐가 주 내용이었다.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1938년 6월 루스벨트 대통령은 공정노동기준법에 서명했다. 공정노동기준법의 제정 취지는 남녀 노동자의 노동력에 합당한 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일은 오랜 기간 최저임금을 도입하지 않은 국가다. 독일은 2015년 1월에 시간당 8.5유로의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그전까지 임금은 정부 개입 없이 노사 협상에 일임했다. 최저임금은 저임금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에 독일 정부는 최저임금제를 실시하는 데 상당 기간 망설였다. 당시에는 인플레이션 위협이 없었다. 최저임금제가 고용 증가와 임금 인상을 일으켜 내수를 진작시킨다고 정부는 바라봤다. 오랫동안 수출에 힘입어 성장을 거듭했던 독일 경제에서 내수를 진작해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하는 기대도 작용한 결과였다. 독일 정부는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 수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협약의 힘이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현실도 인정해야 했다.


스위스에서는 국가 차원의 최저임금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각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최저임금 제도를 운영한다. 실제 제네바에서는 2020년 9월 최저임금 인상이 시민투표로 통과했다. 제네바는 스위스 서부 뇌샤텔, 쥐라 등에 이어 최저임금제를 택한 4번째 도시가 됐다. 제네바에서는 2011년과 2014년 두 차례 최저임금제가 시민투표 법안에 올랐지만 부결된 바 있다. 높은 물가 속에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비 유지를 위해서 세계 최고로 최저임금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에 따르면 정부가 상품 가격을 기준 가격 이하로 거래하지 못하도록 최저 가격을 규제하면 시장에서는 초과 공급이 발생한다. 이 이론에 따를 경우 최저임금제는 실업을 야기하게 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카드는 최저임금이 고용량을 결정짓는 유일한 변수는 아니라고 본다.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햄버거 가게가 상대적으로 적을 경우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감소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중론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감소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기조가 뚜렷하다. 물가와 금리가 급등하면서 실질임금이 감소하자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잇따른 결과다. 여러 어려움에 부딪힌 중소기업인은 최저임금의 직접적인 피해자일 수 있다. 하지만 나라 전체적으로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최저임금이 인상되는지, 노동시장 상황과 경제 여건은 어떤가에 따라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그런 차원에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객관적으로 심도 있게 분석하는 연구들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

<조원경 글로벌산학협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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