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화당의 “감세비용 은폐 작전”

2024-06-10 (월)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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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은 트럼프 감세를 연장하는데 수반되는 소요 경비를 숨기려 한다. 이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화당은 일찌감치 의회예산국(CBO) 비방전에 착수했다. 선제적인 비방공세로 법안비용 추계기관의 신뢰도에 먹칠을 가함으로써 유권자들이 이들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지 않도록 만들려는 일종의 정치공세다.

트럼프의 2017 감세에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가격표가 따라붙었다. 당시 초당파적 기구인 CBO와 조세합동위원회(JCT)는 공동조사를 통해 2017 감세법안이 10년간 1.9조 달러의 연방재정 적자를 추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감세의 경제적 효과가 여기에 수반되는 예산을 상쇄할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CBO와 JCT의 경고를 무시했다.

트럼프 감세법의 상당부분은 내년에 종료된다. 공화당은 감세로 인해 발생한 실질적인 적자폭이 이전의 수치보다 높게 나올 것에 대비해 위해 일찌감치 사전 공작에 착수했다. 감세가 적자를 키웠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트럼프 재집권 프로젝트에 포함된 감세 연장 시도에 제동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CBO와 JCT는 감세 연장이 가져올 적자 추산액을 이미 여러 차례 발표한 바 있다. 공화당은 새로운 추산이 나올 때마다 예상되는 재정 적자폭, 다시 말해 감세연장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연방책임예산위원회도 실제 감세연장 비용이 2018년에 나온 첫 추산치에 비해 5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런 추세라면 2034년까지 1.2조 달러의 추가 재정적자가 발생하면서 총 감세 연장비용은 향후 10년간 4조 달러를 웃돌게 된다.

이처럼 감세연장 비용이 대폭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부분적 이유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예상보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소득성장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요인이 이미 충분히 반영된 상태에서 감세연장안의 경비가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올라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외의 다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공화당이 선호하는 세제혜택과 (주세와 지방세 공제와 같은) 세수진작용 해결책의 예기치 못한 남용이 포함된다.

어쨌건, 계속 오르는 감세 가격표는 공화당에겐 나쁜 소식이다. 내년에 백악관과 의회의 상·하 양원 모두를 손에 넣을 경우 공화당은 추가 감세의 신속한 법제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따라서 트럼프의 사당으로 전락한 공화당은 감세가 불러올 경제적 효과가 감세 비용을 상쇄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한때 그토록 우려했던 재정적자 증가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거짓 주장을 재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화당은 트럼프 재집권과 동시에 시작될 ‘세금 전투’를 어떻게 치를 계획인가? 앞서 말했듯 무자비한 선제적 비방공세로 경기의 판정을 맡을 심판부터 무력화시킨다는 게 공화당의 전략이다. 지난주 하원 공화당 지도부는 CBO를 무력화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으로 소속 의원 전원에게 ‘설문지’를 배포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CBO는 예산이 소요되는 ‘입법안의 채점’을 담당하는 기구다. 하원 공화당의원총회 의장인 엘리스 스테파닉 의원의 레터헤드가 찍힌 이메일은 세금-예산 관련 입법안의 ‘전략적 법제화 계획’을 구체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CBO의 ‘대응성, 정확성과 지각편향’을 평가하려 한다는 설명을 담고 있다.

폴리티코에 의해 처음으로 존재가 확인된 설문지는 구글 폼으로 배포됐다. 의회 스탭을 통해 필자가 입수한 설문지에는 “CBO를 감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긱하느냐?”라든지 “CBO의 비협조에 관한 일화를 제공해달라”는 등의 문항이 포함되어있다. 설문지는 또한 CBO를 “불만족스럽다”거나 “가장 큰 내부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여기서 CBO의 문제 거리로 제시된 첫 번째 예가 지각편향(perceived bias)이다.

분명히 말하자면, CBO는 이전에 몇 번 잘못된 예측을 했다. 전문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는 CBO의 스탭은 객관적인 분석을 내놓으려 애쓰지만 예측과 전망이란 본질적으로 ‘오산 리스크’가 내재된 작업이다. 어쩌다 한번씩 실수가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다. 우선 데드라인이 촉박하다. 또한 추가 예산을 필요로 하는 법적 조치를 연장하는 경우에도 CBO는 일반적으로 기존의 법에 명시된 내용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예상 경비를 산출해야 한다. 다시 말해 바뀐 기준선을 사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실수를 범할 수는 있지만 CBO가 공화당에 정치적 편견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실소를 자아내기에 족하다. CBO의 현직 국장인 필립 스와겔은 공화당 의회 지도부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공화당원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CBO의 스탭이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비정파적인 공무원들로 구성되며, 가장 최근 업데이트된 경제 리서치 결과와 정부 자료를 이용해 최상의 전망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상당수의 외부 기구들이 법안의 비용과 경제적 파급효과에 관한 독자적인 전망을 내놓지만 입법단계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간주되는 전망치는 CBO로부터 나온다. 이런 이유로 공화당에게 정치적으로 불편한 전망을 제시할 경우 CBO는 이들의 집중포화를 맞게 된다. 예를 들어 오바마케어 폐기로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의료보험을 상실하게 된다던지, 이민 증가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전망을 내놓은 이후 CBO는 공화당에게 난타를 당하는 샌드백 신세가 됐다. 그러나 공화당의 부정적 반응은 보통 너저분한 PR 캠페인에 그쳤고, 이번처럼 CBO의 신뢰도에 흙탕물을 끼얹으려들거나 의원들을 총동원해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내려는 조직적인 시도는 없었다.

공화당의 CBO 흠집내기 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시절에 세계적 명성을 지닌 독립적 통계기구들의 권위를 마구잡이로 훼손했다. 그의 하수인들 역시 재능있는 전문가들이 포진한 독립적인 통계전문 기구들을 상대로 유사한 횡포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음모론에 바탕을 둔 ‘대체사실’을 믿고 전파하는 정당에게 객관적 사실을 중요시하는 중립적인 재판관인 CBO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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