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해킹 도둑’과 ‘도둑 은행’

2024-06-10 (월) 채수호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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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크리스마스 전후 2, 3일 사이에 내가 알지 못하는 여섯 건의 데빗카드 사용으로 무려 5,000여 달러나 나의 은행구좌에서 빠져나갔다. 누군가 나의 카드 정보를 도용하여 베xx바이에서 TV, 랩탑, 셀폰 등 전자제품들을 무더기로 사간 것이다. 모바일뱅킹 앱에서 이 사실을 발견한 즉시 P은행과 경찰서에 신고하고 사용하던 데빗카드를 폐기하였다.

은행은 신고한지 3일 만에 해킹당한 금액 전액을 내 구좌에 입금시켜주었다. 은행에서 자체적인 수사를 해서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임시로 크레딧을 지급한다는 단서가 붙어있었다. 나는 은행의 신속한 조치에 고마워하며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알고 이 일을 덮어두었다.

그런데 잊고 있던 이 문제가 지난 4월 초 느닷없이 다시 불거져 나왔다. 은행에서 내게 돌려주었던 돈 중에서 두건의 거래대금 1,600여 달러를 다시 빼내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뜻밖의 인출로 연쇄부도가 난 12건의 수표에 대해서도 건당 36달러씩 오버드래프트 수수료를 부과하였다. 영문을 몰라 은행에 문의하였더니 자체조사 결과 두건에 대해서는 구매자가 베xx바이에 제시한 3포인트 정보가 정확하므로 합법적인 거래라는 것이었다. 나는 ‘도둑이 내 정보를 훔쳐갔는데 그것이 맞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도둑이 베xx바이에서 저지른 6건의 불법거래 중에서 왜 2건만 합법적일 수 있는가?’하고 따져 물었다. 은행은 ‘자체조사 결과 합법적이었다’는 무성의한 답변만 되풀이하였다.


그로부터 한 달간 나는 은행에 열번 넘게 전화를 걸어 이의(dispute) 신청하였고 은행은 매번 같은 내용의 우편통지문을 보내왔다. 아무리 은행을 상대로 하소연해봐야 도둑맞은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우선 베xx바이 본사에 연락해서 도둑이 물건을 픽업해 간 뉴저지 매장의 주소와 날짜, 시간을 확인하여 그 정보를 형사에게 전달하고 그 시간에 내가 뉴욕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뉴욕 지하철티켓 구입기록도 제출하였다. 그 다음 금융거래 불만신고센터(CFPB)에 자초지종을 적어 보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안 되어서 P은행 고객담당 중역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문제 삼았던 1,600달러와 오버드래프트 수수료 432달러 전액을 환불해준다는 것이었다. 작은 승리를 기뻐하기 전에 ‘영어도 서툴고 정신도 흐릿할 늙다리 아시안 이민자이니 적당히 시간을 끌면 제풀에 나가떨어지겠거니’하고 생각했을 대기업의 횡포에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채수호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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