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실과 후회, 속죄와 자기 구원을 섬세하게 그린 가족 드라마’

2024-06-07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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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카튼테일’(Cottontail) ★★★★(5개 만점)

▶ 아내를 잃은 애잔한 슬픔과 아픔을
▶속으로 꾹꾹 감추는 듯한 표현속에
▶주인공 모습에 그와 같은 슬픔 젖게해

‘상실과 후회, 속죄와 자기 구원을 섬세하게 그린 가족 드라마’

켄자부로(오른쪽)가 아들 토시가 보는 중에 아내의 유해를 호수에 뿌리고 있다.

죽은 아내의 유언에 따라 아내의 유해를 영국의 한 호수에 뿌리기 위해 도쿄서 영국으로 여행하는 남자의 로드 무비로 슬픔이 영화 전체를 감싸 안고 있는 아름다운 영화다. 상실과 후회 그리고 속죄와 자기 구원을 섬세하고 민감하게 그린 고상한 가족 드라마이기도 한데 애잔한 슬픔이 촉촉이 배어있긴 하지만 결코 감상적이지는 않다.

이 영화가 감상적이 되지 않도록 한데는 아내의 유해를 들고 가는 남편 켄자부로 역의 일본의 베테란 배우 릴리 프랭키의 감지하기 힘든 미묘한 연기 탓이다. 영화 내내 풀 죽은 강아지 모양을 해가지고 아내를 잃은 슬픔과 아픔을 속으로 꾹꾹 내리 누르며 감추는 듯이 표현하는 모습을 보자면 그와 같이 슬픔에 젖어들게 된다. 그의 눈동자와 얼굴 표정은 마치 죽은 사람의 그 것을 닮았다고 해도 좋겠다.

영화는 도쿄에 사는 작가 켄자부로가 단골 수시 집에 들러 바에 앉아 맥주를 시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이어 맥주잔을 하나 더 달라고 해 자기 옆자리에 놓고 술을 따른다. 이 잔은 치매로 죽은 아내 아키코(타에 기무라)를 위한 것이다. 여기서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 젊은 켄자부로(쿠도 코세이)가 아내가 될 아키코(유리 추네마추)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그려진다.


아키코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난 뒤 사찰의 스님이 켄자부로를 불러 편지봉투를 건네준다. 아키코가 죽기 전에 자기 사후에 남편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에 따른 것이다. 내용은 아키코가 자기 유해를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방문했던 영국의 레이크 디스트릭 지역의 윈더미어 호수에 뿌려 달라는 것. 그래서 켄자부로는 아내의 유해와 아내가 윈더미어 호수를 방문했을 때 찍은 낡은 사진 한 장을 들고 영국으로 떠난다.

여행에 동반하는 것이 아버지와 관계가 소원한 켄자부로의 아들 토시(료 니키시도)와 며느리 사추키(린 다카나시)와 어린 손녀. 왜 켄자부로와 토시의 관계가 소원한지 명확히 보여주지 않고 있는데 다만 켄자부로가 자기 주위로 울타리를 짓고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그래서 켄자부로는 혼자 영국으로 가겠다고 고집부리다가 마지못해 아들 가족과 함께 길을 떠난다. 레이크 디스트릭 지역은 영국의 유명 여류작가로 아동들의 인기 소설 ‘피터 래빗의 이야기’를 쓴 베아트릭스 포터가 살던 곳으로 아키코는 죽을 때까지도 어려서 이 곳을 방문 했을 때 산 토끼 펜던트를 목에 걸고 있었다.

영화는 가끔 과거와 현재가 교차로 그려지면서 젊은 켄자부로와 아키코의 데이트 모습 그리고 치매 증세가 악화돼 고통 하는 아내를 돌보는 켄자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국에 도착한 켄자부로는 아들 내외를 남겨놓고 혼자 기차를 타고 윈더미어호수를 찾아가나 기차를 잘 못타 도중에서 내려 터덜터덜 걸어 한 농가에 이른다. 여기서 켄자부로는 최근에 상처한 친절한 농부(키아란 힌즈)와 그의 딸(아오페 힌즈)의 도움을 받아 윈더미어 호수에 도착한다. 그리고 뒤 늦게 호수에 온 아들 내외를 만나 낡은 사진의 현장을 찾아 간다. 마지막 장면이 아름다운데 미련과 잘못을 떨쳐버리고 화해와 평화의 온기가 느껴진다. 영국의 패트릭 딕킨슨이 극본을 쓰고 감독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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