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화의 단상 1, 2, 3

2024-05-30 (목)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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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단상 1

평화의 고요롭고 다부진 몸짓이 일어났다. 워싱턴DC에서 지난 5월22일부터 3일간,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이 주관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평화컨퍼런스가 열렸고, 미주한인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기독교평화네트워크 창립대회도 개최되었다. 참가자들은 연방 상하원의원실을 방문하여, 미 의회에 발의된 한반도평화법안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요청하였으며, 종전과 남북미교류협력을 통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실현을 촉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갈라져 서로 적대하며 전쟁 불사의 섬뜩한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대치하는, 남북한의 평화를 갈망하는, 평화의 일꾼들이 모여 만든 절실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몸짓이다.

평화 단상 2


평화의 외침이 외면 받고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과 가자의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시위가 미국의 여러 대학들과 심지어 고등학교에서까지 일어나고 있다. 몇몇 대학의 일부 졸업생들은 학위수여식 도중 가자전쟁 반대를 외치며 퇴장하기도 했다.

모든 전쟁은 악하고 참혹하다. 지금까지 가자전쟁으로 약 3만5,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는데 그 가운데 3분의 2가 여성과 어린이들이다. 시위는 학생들의 정의감,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공분과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자비심, 인간 내면에 자리한 비폭력을 향한 평화의 갈망을 보여주고 있다. 학생들의 순수한 평화의 외침과 몸짓이 억눌려서는 안 되며, 누구도 억누를 권한이 없다.

평화의 단상 3

얼마 전 분도를 앞두고 있는 경기도가 새로 생길 도의 이름을 ‘평화누리특별자치도’로 발표했다. 그러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수만 명이 반대 청원을 했다고 한다. “북한 지명 같다”, “70, 80년대에 지을 법한 이름인데 그냥 경기북도라고 하면 안 되나”, “집값 떨어지기 좋은 이름이다”, “평화누리도 이름부터가 종북 명칭” 등등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였다. 도의 이름은 도민이 정하는 것이지만 ‘평화’라는 명칭에 대한 편향적 정서적 거부감은 유감스럽다.

새로 생길 도시나 도의 이름으로 평화라는 이름이 왜 나쁜가, 이 용어가 왜 종북인가? 그렇지 않다. 평화는 보수도 진보도, 종북도 척북(斥北)도 아닌 우리 겨레를 살릴, 모든 이들의 따듯하고 평화로운 마음과 미래지향을 담고 있는 아름답고 친근한 말이다.

‘평화’를 도시의 이름으로 사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제적으로 생경한가? 그렇지 않다. 이미 오래 전부터 ‘평화’를 도시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예루살렘(이스라엘), 이슬라바마드(파키스탄), 미르호로드(우크라이나), 마디나트 앗 살람(이라크) 등은 모두 평화의 뜻을 담은 도시 이름들이다. 한민족은 예로부터 흰색을 선호하고 흰옷을 즐겨 입는 백의호상과 평화를 사랑하는 전통을 지닌 민족이라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오면서도, 아직까지 ‘평화’ 이름의 도시나 행정구역 하나 없는 것은 좀 궁색한 면이 있다.

평화가 나와 우리의 마음과 일상의 삶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은 평화를 요청한다. 물론 평화의 길은 쉽지 않다. 평화사상가 함석헌 님은 ‘우리는 하나다’라는 전체의식의 자각에서 평화가 비롯된다고 말한다. 평화 의식과 함께 비판적 분석 또한 요청된다. 심층적 분석 없이는 피상적 평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열린 마음으로 힘써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나부터, 가정에서부터, 작은 일부터 평화적인 해결 방식을 익혀야 한다. 평화가 우리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평화의 길에 문제해결의 모든 답이 있다. 평화가 나와 너를, 우리 서로를, 나라와 나라를 서로 적이 아니라 이웃되게 한다. 평화 없이는 행복도 없다. 평화가 길이다. 평화(平和), 함께 사람다움을 지키며 고르게 사는 사람의 길이다.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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