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효율적 이타주의: 자선사업의 새물결

2024-02-27 (화) 이영실 미주한인 불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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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세청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 150만개 정도의 교회, 사찰을 비롯한 비영리단체와 법인이 있습니다. 그중 불과 10년전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라는 자선사업의 새로운 물결이 일기 시작했는데 현재까지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불교 교리에 사무량심(자.비.희.사)이라는 네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의 고통을 없애주고 즐거운 마음을 주게 한다는 희심 혹은 이타주의(Altruism)에 효율적(Effective) 단어를 붙인 것이 궁금했습니다. 이 사회운동은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윌리엄 멕아스킬 교수가 시작하여 호주의 윤리철학자 피터 싱어,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더스틴 모스코비츠, 일론 머스크, 인공지능의 공동창업자 샘 올트만 등 사회적 저명인사, 억만장자 등이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원인을 분석하고 증거와 통계에 의해 가장 효율적으로 돈과 능력을 사용하고,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사회운동이라는 명분이 시대의 흐름에 부합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비효율적인 이타주의, 생태계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과 불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시간 후에 회사에 아주 중요한 발표가 있어요. 강가를 지나 회사에 들어가고 있는데 어린아이가 물에 빠졌어요. 당장 그 아이를 구하러 물에 뛰어들면 양복 다 버리고 발표 망치고 커리어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이 경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들어 아이를 구할 사람 손들어보세요.” 강연에 참석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다른 예도 있습니다. 르완다 내전에서 많은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훗날 노벨상까지 받은 제임스 오르빈스키라는 의사는 너무 많은 환자를 감당하지 못하여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환자의 이마에 1번 2번 3번의 번호를 매긴 것입니다. 3번은 살릴 가망이 없는 환자라서 진료에서 뒤로 밀렸습니다. 인간적으로 안타깝지만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효율적인 방법이었다는 인용을 하고 있었어요.

이번에는 비효율적 이타주의 혹은 그냥 이타주의에 대한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8년전 한국의 병원 응급실에 있었습니다. 가망이 없는 환자로 분류되었지요. 그런데 저는 머리가 가려운 것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며칠간 피와 땀이 범벅이 되어 머리카락이 몹시 더럽고 가려운 느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간호사가 지나갑니다. 제 머리를 감겨달라고 부탁했어요. 젊은 남자간호사가 저를 한참 바라보고 이름과 나이 병명 등을 살펴보더니 말했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여기서 머리 감으면 안 되거든요. 몰래 가져올 거라 들키면 안되서요.”

잠시 후 간호사가 들어와 커튼을 닫고 말했어요. “그냥 편안히만 계세요.”

머리가 씻어지는 동안 그 시원하고 따뜻한 느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통증이 많았지만 견딜만 했습니다. 저는 그 젊은 남자간호사를 만나고 싶습니다. 나의 괴로움을 해결해주고 기쁨을 안겨준 간호사님께 진심 감사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자비의 마음으로 함께 슬퍼하고 남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효율적 이타주의라는 새로운 봉사정신과 사회철학에 공감하지만 이는 150만개의 비영리 법인중 하나의 이념일 뿐입니다. 전통적인 봉사단체는 오랜 세월 변치 않고 그들만의 독창적인 사회참여와 봉사이념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살피는 작은 선의와 봉사가 거대한 힘으로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볼 수 있고, 확인 가능하고, 통계에 의한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선의를 행하는 사람도 마땅히 필요하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당장 도움을 주어야하는 감정적인 선의도 중요합니다. 이 모두가 인간적인 윤리와 철학, 사회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하면서, 조금씩 정의롭게 발전해나가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영실 미주한인 불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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